아베의 세밑 … 가미카제 영화 보고 "감동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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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가 2013년을 일본군 자폭 특공대, 일명 가미카제(神風)를 소재로 만든 영화를 관람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31일 도쿄 롯폰기 한 영화관에서 제로센 전투기 조종사가 주인공인 ‘영원의 제로’를 본 후 기자들에게 “감동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영화는 난징(南京) 대학살을 부정하고, 평화헌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 문화계의 대표적 우익 인사 하쿠타 나오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12월 26일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참배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여온 아베의 취임 1년을 마무리하는 결정적 행보였다.

더군다나 그는 새해에 태평양전쟁의 격전지였던 남태평양 제도를 순방할 방침이라고 산케이 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아직 정확한 방문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직 일본 총리가 남태평양제도를 방문하는 건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가 피지와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 이후 29년 만이 된다.

 신문은 “순방이 일본인 전몰자를 위령하고 유골 수집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베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데 이어 옛 군국주의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태평양전쟁의 싸움터를 일부러 찾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도 예상된다.

 나카소네 전 총리도 총리 재임 중인 85년 1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20만 명의 일본군이 전사한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 후 그해 8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선 43년 4월 부겐빌 상공에서 일본 연합함대의 최고통수권자이자 진주만 공격의 주역이었던 야마모토 스고로쿠(山本五十六) 사령장관이 전사하는 등 20여만 명이 전멸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중 국외에서 사망한 일본인은 약 240만 명. 이 중 50만 명가량이 파푸아뉴기니·솔로몬 제도(8만8600명) 등 남태평양 지역에서 숨졌다.

 일본은 2004년 2월에도 아키히토(明仁) 일왕 내외가 남태평양의 격전지였던 마셜 군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공화국, 팔라우 등 3개국을 방문하려다 정치적 의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치안상의 문제점 등이 제기되면서 이를 취소하고 이듬해인 2005년 6월 사이판 방문으로 대체했다.

 아베는 또 남태평양제도 순방과 별개로 올 9월 팔라우에서 열리는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PIF는 팔라우·호주·뉴질랜드 등 남태평양 지역 16개국이 가맹해 있는 지역협력체다. 이제까지 일본은 부대신(차관)급을 파견해 왔지만 이번에는 아베 총리가 직접 참석하는 방향으로 조정 중이다.

 신문은 “아베 총리는 2014년부터 2년에 걸쳐 여러 차례로 나눠 남태평양 제도를 방문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아베는 방문국에서 정부개발원조(ODA) 제공 의사를 밝히는 등 경제협력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아베가 남태평양 제도에 공을 들이려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측면도 있다. 산케이는 “중국은 ‘중국·태평양도서국 경제개발협력 포럼’을 개최해 이 지역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이를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과 연계하고 있다”며 “아베 총리의 남태평양 제도 방문에는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가미카제(神風)=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연합군에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 조종사들은 일왕을 위해 죽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연합군 함대에 동체와 함께 부딪치는 무모한 공격을 가했다. 1945년엔 1000명이 넘는 특공대원이 가미카제 공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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