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1차대전 100년 맞는 영·독은 공 차며 화해하는데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채인택
논설위원

2014년은 유달리 평화를 강조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라서다. 약 1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뒤처리도 미숙해 제2차 세계대전으로까지 번졌다. 침략을 반복한 어리석음의 상징이다. 유럽에선 평화기원과 교육 행사가 펼쳐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당시 서부전선이던 벨기에 몽스가 행사 중심지다. 인근의 이프레에서 전쟁 첫해인 1914년 ‘성탄절의 기적’이 벌어졌다. 참호전을 벌이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성탄 이브와 당일에 자발적인 비공식 임시휴전을 했다.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약 43㎞에 걸친 참호에서 쏟아져 나와 서로 악수하고 함께 캐럴을 불렀다. 당시 일간 브리티시미러는 이렇게 보도했다. “처음엔 몇몇 병사가 전선에 흩어진 전사자 시체를 수습해 묻어줬다. 그런데 갑자기 참호에서 누군가 축구공을 차올렸다. 이를 본 양국 병사들이 서로 달려와 축구 시합을 펼쳤다.”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8000만 파운드(약 1380억원)를 들일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 평화행사의 핵심을 바로 이 성탄휴전 축구의 재현으로 잡았다. 영국축구협회와 전국소년축구연맹이 나선다. 전국 모든 공립중등학교에서 각각 2명의 학생 친선대사와 1명의 인솔교사를 현지에 보낸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갈등·대결의 위험성과 화합·상호이해의 필요성을 가르치자는 취지에서라고 한다. 독일은 물론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대표단을 보낸다.

어리석은 과거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100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끊임없이 후손들에게 되풀이해 가르치는 모습이다.

 한국엔 올해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할 한 해가 될 수도 있겠다. 일본에서 새해 벽두부터 뜬금없는 소식이 들려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조만간 태평양전쟁 격전지인 남태평양 제도를 순방할 것이라고 한다. 현직 총리로는 29년 만의 방문이라는데 일본군 전사자 위령 행사와 유골 발굴을 강화하겠다는 아베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중 극동군사재판 판결로 사형당하거나 재판·수감·병보석 도중 사망한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이은 또 다른 도발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이다. 유럽에선 기적의 성탄축구 재현으로 화해의 미래를 도모하는데 아베는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변인인 슈테펜 자이베르트는 지난해 12월 30일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모든 나라는 20세기의 끔찍한 사건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정직하게 책임져야 한다. 정직한 책임을 토대로 했을 때만 과거의 적들과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 이것이 독일이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이며 이는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적용된다고 본다.”

채인택 논설위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