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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창작실] 소설가 김성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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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엊그제 눈비 내리는가 했더니 아연 봄이다.환하게 봄이 와 있다.남녁으로부터 만발한 매화 향기 훈훈하게 풍겨오더니 도시의 마른 나뭇가지들도 새잎 틔우려 부지런히 물을 길어올려 보랏빛 생기 돈다.

그러나 강원도 산 속은 여전히 눈 덮인 겨울이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소재지에서 다시 택시로 1만원 거리의 깊은 산골 외딴 집에 홀로 소설가 김성동(56)씨는 살고 있다.겨우 바람막이나 할 정도의 허름한 집에 절 아닌 절이란 뜻의 ‘비사난야(非寺蘭若)’란 문패를 걸고 1년 남짓 구도하며 작품을 쓰고 있다.

"나는 왜 또 이 산 속으로 왔나. 산 속으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고 평안도 시인은 말했지만 내겐 버릴 세상도 없다. 한번도 정식으로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그립다."

속세를 향한 그리움 때문에 중도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소설가로서 사회와 가정에 편안히 몸담지 못하고 7년째 충북 영동의 영국사, 강원도 인제 백담사, 경기도 양평 봉선사 등 절 근처를 떠돌다 이제 이 외딴 곳으로 흘러들어 '스스로 중'이 된 김씨. 그는 새벽 4시에 아침 예불을 올린다. 반시간 가량 금강경을 독송하고 부처님 앞에 백팔배를 한다.

높이 40㎝ 남짓의 그 돌부처는 2000년 여름 양평에서 몇년간 공들인 작품 구상 원고를 물난리로 떠내려 보내고 대신 큰물에 떠내려온 것을 주운 것이다. 그때부터 슬픈 중생 표정의 이 부처를 '미륵 할아버지'로 부르며 예불을 올리고 있다.

예불을 올리며 장편소설 '마하 신돈'의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공민왕과 함께 쓰러져가는 고려를 민초의 편에서 다시 세우려다 좌절한 신돈의 개혁 사상과 큰(마하)삶을 미륵신앙의 관점에서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19세에 출가해 10여년간 산문에서 성불(成佛)이 눈에 보이듯 수행하던 김씨는 75년 쓴 단편 '목탁조'가 불교계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승적에서 제적당했다.

어찌해 볼 수 없는 젊음의 고통, 끝간데 없는 인간으로서의 그리움을 일단 문학을 통해 눈에 잡힐 듯 정리하며 성불의 세계로 나가려 했는데 절집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그래 문학으로 구도하다 다시 또 절집,박탈당한 '중쯩', 승적이 그리워 절 주변을 맴돌다 아예 자기만의 절에 들어 구도와 문학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문학 따로 구도 따로 일 수 없습니다. 둘 다 결국은 혼자서 개척하고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고독한 길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여서 몸 전체를 붓삼아 용맹정진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독경을 해도, 글을 써도 항상 슬픈 것은 나 혼자 지금 어디만큼 걸아가고 있는가, 그 '홀로'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열다섯살 때부터 세상의 끝의 끝이 보고싶어 가출했던 김씨. 홀로 그 끝에는 무엇이 있나를 보고팠던 김씨는 항상 떠났다. 그렇게 중뿔나게 홀로 떠나고 떠나도 얻은 것은 항상 제자리였다는 깨달음을 슬프고 아름다운 철학 우화로 써내겠다고도 다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홀로'라는 외로움에 이젠 지쳐 김씨는 '중쯩'을 회복하려한다. 불문(佛門)이든지 사회에서 인정하는 '쯩'을 얻든지 이제 제도권에 들어가 '정식'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생 그리움만 좇아 안락한 가정 버리고 구름처럼 물처럼 떠돌고 있는 김씨에게 제도란, 틀이란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래 설사 승적을 회복해 절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타고난 성격상 절 집 한 곳에 묵묵히 머무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집이 있어야 떠돌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집도 절도 없이는 떠돈다는 말 자체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형식이 있어야 내용도 폭 담길 수 있고 또 그 형식을 깨뜨리는 자유와 개혁, 파격도 나올 수 있습니다. 끈 떨어진 연은 허공 저멀리 날아가버리다 결국 어느 하늘 아래서 곤두박질치겠지요. 인간들이 서로 인정하며 편안하게 살기 위해 만든 제도로서의 형식도 중요함을 요즘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2년 전 김씨는 자신의 출세작인 '만다라'를 22년 만에 전면 개작했다. 번뇌와 방황에 결국 파계하고 마는 주인공을 다시 산문에 들게 결말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그런 심경으로 김씨는 형식,제도를 중히 여기며 오는 봄과 함께 정식 승려로,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강원도 진부=이경철 문화전문기자

<김성동 약력>

▶1947년 충남 보령 출생
▶65년 출가, 76년 하산
▶78년 소설 ‘만다라’로 한국문학신인상 수상
▶장편 『집』『길』『국수(國手)』등과 소설집 『피안의 새』등
▶신동엽창작기금,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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