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영대립 틀 깨야 품위 있는 정치 가능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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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호 02면

고성, 반말, 욕설, 비속어…. 이런 저질 언어습관이 버젓이 횡행하는 몇 안 되는 곳 가운데 하나가 국회다. 국민들은 2013년의 국회에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저속한 표현과 적개심을 솟구치게 하는 막말을 수없이 들어 왔다. 특히 여야가 팽팽하게 대립할 때 불쑥 터져나온 막말은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가곤 했다. 그때마다 여야는 민생을 제쳐둔 채 낯뜨거운 감정싸움으로 날을 지새웠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악순환이었다.

국회의원들이 내뱉은 거칠고 자극적인 표현들은 폭력사태 못지않게 정치 혐오와 불신을 키웠다. 잘못은 여야 모두에 있다. 흔히 여당은 야당에, 야당은 여당에 그 책임을 전가하지만 국민의 눈엔 다를 바 없다. 특정 시점에서 어느 한쪽이 막말을 더 많이 했을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책임의 무게가 달라지진 않는다.

야당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자서전에서 썼듯이 “우리가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다. 그 같은 반성은 고스란히 여당의 몫이기도 하다. 보수를 자처한다면 기본적인 교양과 양식을 갖춰야 한다. 국민의 통념과 일반적 교양수준에 미달하는 작태는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는다.

오죽하면 국회 내에서 막말을 규제하는 법안 발의가 잇따르겠나. 새누리당 류성걸 의원은 어제 회의 중 고성을 내지르거나 반말 또는 비속어를 쓰는 국회의원을 징계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법에 ‘폭력 행사’의 내용을 신체적·물리적·언어적 폭력으로 구체화하자는 것이다. 그런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엔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직무활동 중 다른 사람을 모욕·비하·희롱·위협하는 발언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넣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국민의 정치 혐오가 깊어졌고, 국회의원의 자정 능력이 의심스러우니, 긴급피난 조치 비슷하게 법으로 막말을 규제하자는 취지엔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실제 몸싸움을 금지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발효한 이후 국회의원들은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고 있다. 그와 비슷하게 ‘막말 금지법’이 확실히 만들어지면 국회의 막말 사태도 수그러들 수 있다.

그렇다고 법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막말은 수준 이하의 양식과 노골적인 상호 적대감이 결합해 나오는 것이다. 법이 국회의원들의 적대적 진영의식까지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장기적으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진영대립의 구조적 틀을 깨고 설득과 타협의 정치가 일상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흥분과 준동(蠢動)이 이성과 토론에 길을 비켜준다. 새해 여야는 그 첫걸음을 함께 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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