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터라이프] 애견과 춤을…삶이 즐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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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지금 자신이 사는 동네에 애견센터가 몇 개나 있는지 떠올려 보라. 분명 두세 개는 된다. 개 카페나 개 호텔도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보신탕을 먹는 한국은 야만국"이라는 외국 여배우의 비판에 화를 낼 수는 있어도 "개는 음식"이라고 떠들고 다니단 욕먹기 십상인 세상. 국내에도 개를 가족으로 여기는 애견인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 애견산업 규모는 약 2조원.

하지만 이런 애완견 열풍에도 불구하고 도그 쇼(dog show)는 우리에게 아직 생소하다. 개를 데리고 뭔가 하는 행사라는 느낌은 있지만 딱히 설명하긴 힘들다. 그렇다고 어렵게만 생각할 건 아니다.

도그 쇼란 한 마디로 개 박람회다. 다양한 종(種)의 개를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하면서 애견산업의 진보도 확인하는 자리라고 보면 된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는 도그 쇼의 수는 다 셀 수 없을 정도. 하지만 권위를 인정받는 쇼는 영국의 크러프츠(Crufts) 쇼와 미국의 웨스트 민스터 쇼 둘이다. 이 가운데서도 영국 애견협회인 캐널클럽이 주최하는 크러프츠 쇼는 그 역사나 규모면에서 '세계 개 엑스포'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1891년에 시작돼 1백회를 맞은 2003년 크러프츠 쇼가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5일간 런던 근교 버밍엄에 있는 국립전시센터(NEC)에서 열렸다. 쇼는 전 세계에서 12만여명의 관람객들이 몰려 올해도 어김없이 대성황을 이뤘다.

◆세계 최고의 개를 찾아라!

크러프츠 쇼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쇼 최우수견인 'BIS(Best in Show)'를 뽑는 것이다. 여기서 우승하면 '세계 최고의 개'라는 영예를 얻는 만큼 경쟁은 당연히 치열하다. 알고 보면 상금은 5백파운드(약 1백만원)가 고작.

하지만 올해에도 전 세계 20여개국 3천여개 중소 도그쇼에서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는 쟁쟁한 견공(犬公) 2만1천여마리가 BIS를 목표로 출사표를 던졌다.

선발에서 가장 중요한 심사기준은 순수 혈통을 얼마나 잘 보존하고 있는가 하는 것.

이를 평가하기 위해 국제 공인 심판관들은 출전한 개들을 일일이 손으로 만져가며 치열과 골격, 그리고 근육의 발달상태 등을 확인했다. 품성.충성도 등의 평가를 위해선 주인과 함께 무대를 걷게 해 사람과의 '궁합'을 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쳐 탄생한 올해의 BIS는 '태양견'이라는 애칭을 지닌 페키니스 종의 '대니'. 스코틀랜드 태생의 세살배기 대니는 이로써 앞으로 1년 동안 개들의 왕으로 군림하게 됐다.

◆니들이 개를 알아?

BIS가 최고의 관심사이긴 하지만 크러프츠 쇼의 전부는 아니다. 개와 관련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공연.전시.판매된다. 개에 대해 좀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도 크러프츠 쇼에 오면 "이런 게 다 있었네"라며 무릎을 치게 마련.

그러다 보니 쇼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부에 도장을 찍는' 이들도 많았다. 순종견 전시장 앞에서 만난 에이프릴 맥닐(34.여.런던)은 "쇼를 보기 위해 아예 직장에서 5일간 휴가를 얻었다"며 웃었다.

다양한 행사들 중 단연 관람객들의 인기를 끈 것은 장애물 통과 대회와 힐워크 투 뮤직(Heelwork to Music.개 댄스)시범이었다.

이중 특히 힐워크 투 뮤직 시범에는 이 분야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메리 레이가 자신의 애견과 신기(神技)에 가까운 묘기를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개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를 평가하는 핸들링 대회에는 한국인 최초로 유홍일(16)군이 출전하기도 했다.

이밖에 전시회장 곳곳에 설치된 4백여 부스에선 개에 필요한 모든 것이 판매돼 지나는 개 주인들의 군침(?)을 흘리게 했다. 이중엔 개 구급상자.맞춤형 깔개 같은 '호화 용품'도 있었다.

로니 어빙 캐널클럽 회장은 "초기 크러프츠 쇼는 단순히 우수한 종의 개를 교환하기 위한 행사였지만 오늘날에는 개와 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합축제"라고 말했다.

◆달려라 장군아!

이번 크러프츠 쇼에는 한국 개로선 처음으로 진돗개 '장군이'가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장군이는 삼성 에버랜드와 진도군청이 진돗개를 캐널클럽 순혈 품종에 등록하기 위해 발굴해낸 대표 선수.

이를 위해 이미 6개월 전 영국에 도착, 검역절차를 마친 장군이는 쇼 기간 동안 삼성전자 부스에 머무르며 진돗개의 우수함을 알렸다. 삼성전자는 올해로 11년째 크러프츠 쇼를 후원하고 있다.

장군이를 본 외국인들은 처음엔 "일본의 아키다 견이 아니냐"고 물었으나 진도(珍島)의 엄격한 개 관리체계에 대해 듣고선 "한국도 애견 선진국"이라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군이가 캐널클럽의 공인을 받은 1백96종의 명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진 영국에 머무르며 3~4대에 걸쳐 새끼를 낳아 순혈을 입증해야 하는 등 여러 단계가 남은 상태다.

하지만 현지에서 진돗개의 순종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영국인 품종 관리인 맥 퍼넬 카펜터는 "머리가 좋고 주인에 대한 복종심이 강한 진돗개는 가족견으로서 훌륭한 조건을 갖췄다"며 등록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영국 버밍엄=남궁욱 기자

<사진설명>

2003년 크러프츠 도그 쇼가 지난 6일부터 5일간 영국 버밍햄 국립전시센터에서 열렸다. 쇼는 올해도 전 세계 12만명의 관람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사진은 쇼 최우수견(BIS) 선발대회에 참가한 말티즈들이 종별 예선을 치르고 있는 모습. 왼쪽은 이번 쇼에서 최우수견으로 선정된 페키니스 종의 '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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