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 인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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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최고의 인쇄물은 아직까지는 일본에 있는 「백만탑타나니」로 되어 있다. 77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연기가 박힌 인쇄물로서 가장 오래된 유품으로는 「금강반야경」이 있다. 이것은 868년의 것이다.
이것들보다 더 앞서 나온 인쇄물들이 또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도 따로 없으니 이것들이 최고의 인쇄물이란 명예를 누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무렵의 인쇄물들은 모두 인본이다. 그것도 본판이다. 지금 대영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아미타불의 호부며 건부4년(877년) 의 월력이나 마찬가지다.
요새 가장 흔한 인쇄법은 활판인쇄이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것도 이 활판인쇄법이다.
동양에서는 활자인쇄도 언제부터 누가 발명했는지 분명치 않다. 송대의 심괄이란 학자가 쓴 <몽계필담>에 활자의 발명에 관한 기록이 겨우 엿보일 뿐이다.
여기 의하면 1041년∼48년에 필승이 활판을 만들었다 한다. 교니에 글자를 새기고 불에 구워 단단히 한다. 그리고 앞에 철판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송진과 종이 재(회)를 섞어서 깔고 쇠 틀을 철판 위에 놓고, 틀 속에 구운 글자를 채워 넣는다.
이때의 「교니」가 뭣인지 분명치가 않다. 그저 점토에 뭔가 섞어서 가소성을 늘인 것이리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점토에 뭣을 어떻게 섞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로부터 2세기 후, 원대에 왕정이 쓴 <농서>에도 활판인쇄물 얘기가 나온다.
필승때 보다 별로 큰 진보도 없다.
우선 활자를 묶어놓은 접착물로 송진대신에 희력청을 쓴다. 또 활자의 재질을 잘 구운 기와라 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석활자 얘기도 나온다. 활자에 구멍을 뚫고 쇠철사를 넣어 술을 맞춘다 했다. 그리고 이것은 먹이 잘 묻지 않고 활자가 깨지기 쉽기에 나쁘다고 했다.
왕정이 추장한 방법은 목활자법이었다. 판목에 글자를 새긴 다음에 톱으로 쓸어 활자를 만들고, 틀에는 대나무 토막을 쓰고, 조판 후에 활자와 활자사이의 틈새에는 톱밥을 넣어 고정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에 의한 인쇄물로서 남아 있는 것은 전혀 없다. 겨우 1494년의 <금신만화곡>이 있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동활자가 나온 것도 16세기 중엽 때부터의 일이다. 최근에 우리 나라에서 「청량답순종심요법문」이 발견됐다. 학자들은 이것을 1298년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파리」에서 발견된 직지심경보다 79년이나 앞선 것이다.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 되는 셈이다. 자랑하기에는 아직 이를지도 모른다. 좀더 세밀한 과학적인 검사가 있어야겠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세계에 가장 일찌기 금속활자본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은 더욱 확인되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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