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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1379억원 … 쏘나타 6500대 수출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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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월급이 1400달러(약 150만원)밖에 되지 않던 2003년, 추신수(31)는 부인 하원미(31)씨와 함께 미국에서 ‘단칸방’ 생활을 했다. 월세 700달러인 방 두 칸짜리 아파트를 빌려 다른 선수 부부가 방 하나를 쓰고, 또 다른 선수는 거실에서 잤다. 화장실과 부엌은 함께 사용했다. 가난한 마이너리거의 삶이 대부분 그렇지만 미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추신수에겐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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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뒤인 2013년 12월 22일(한국시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는 구단 홈페이지에 “FA(자유계약선수) 추신수와 7년간 1억3000만 달러(약 1379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추신수와 텍사스의 계약은 메이저리그 역대 27위, 외야수로는 역대 6위다. 추신수는 박찬호(40·은퇴)가 2002년 텍사스와 계약했던 한국인 최고액(5년 6500만 달러)은 물론 스즈키 이치로(41·뉴욕 양키스)가 2007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했던 아시아인 최고액(5년 9000만 달러)도 뛰어넘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계약 총액 1억 달러 이상의 주인공이 된 추신수와 비교할 다른 종목 선수도 없다.

 도전정신과 승부근성. 추신수의 성공을 열어 준 키워드였다. 부산 수영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한 그는 2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했다. 추신수는 박찬호의 활약을 TV로 보며 막연하게 메이저리그를 꿈꿨다. 부산중-부산고를 거치는 동안 늘 최고였지만 개인훈련을 가장 많이 하는 악바리였다. 야구뿐 아니라 싸움을 해도, 게임을 할 때도 1등이 될 때까지 쉬지 않았다. 롯데 자이언츠가 2001년 신인 1순위로 그를 지명했지만 추신수는 미국으로 떠났다. 편안함·익숙함과의 이별이었다. 고교 최고 왼손투수로 꼽혔던 그는 외야수로 쓰겠다는 시애틀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추신수가 2000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신일고 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중앙포토]

 추신수는 시애틀 루키리그에서 꽤 고생했다. 날고 기는 남미 선수들을 보면 메이저리그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세상 같았다. 추신수는 미국에서 한국식으로 살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죽어라 훈련했다. 덕분에 세 차례(2002·2004·2005년) 퓨처스 올스타에 뽑혔고, 2005년 5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메이저리그에 오른 뒤에도 추신수의 투쟁은 계속됐다. 포지션이 겹치는 이치로가 우익수를 양보하지 않아 추신수는 10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다시 내려갔다. 결국 2006년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됐고 2009·2010년 2년 연속 3할 타율, 20홈런, 20도루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몇 차례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왼손 투수에 약점을 보이며 ‘반쪽 선수’로 전락하고 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돼 낯선 1번타자·중견수의 역할을 맞게 됐다.

 올해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최다인 26개 몸 맞는 공을 맞는 악전고투 끝에 타율 0.285, 21홈런, 20도루, 107득점, 112볼넷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1번타자로 올라선 그에 대해 ESPN은 21일 ‘ 볼넷을 많이 얻는 선수들은 나이가 들어도 잘한다. 7년 계약의 가치가 있다’고 분석했다.

 추신수가 내년부터 2020년까지 받게 될 1억3000만 달러는 대당 2만 달러에 수출하는 쏘나타 6500대의 가격에 해당한다. 막대한 부품과 인력이 투입되고 연구개발·마케팅 비용이 들어가는 자동차와 달리 추신수는 건강한 몸과 독한 마음만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한국인이란 걸 동료들이 알아줄 때까지 방망이에 태극기를 새겼던 추신수는 한국 스포츠 사상 최고의 ‘수출품’으로 인정받았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알파벳 대·소문자도 구분하지 못했던 그는 바닥부터 딛고 일어섰다. 숱한 도전과 투쟁 끝에 추신수는 전성기 나이에 FA가 됐고 스포츠 재벌로 불려도 좋을 부(富)를 얻었다. 추신수가 지난해까지 뛰었던 클리블랜드의 지역신문 ‘플레인딜러’는 ‘추신수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이자 비틀스고, 수퍼맨’이라며 그의 성공을 축하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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