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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아 국악치료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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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아동(오른쪽)이 두달간 국악 음악치료를 받고 창작 국악극 `콩쥐팥쥐` 무대에 올랐다. [사진 베링거인겔하임]

지난달 29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 화이트홀. 서울시어린이병원 소속 발달장애 아동 11명이 무대에 섰다. 아이들은 첫 무대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리랑 가락이 흐르자 준비했던 창작국악극 ‘콩쥐팥쥐’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기 시작했다. 객석에서는 “우리 애들 맞아?”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자폐증·학습장애을 앓고 있는 발달장애 아동은 인지력·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하다. 낯선 환경을 꺼리고,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져 협업이 어렵다. 또래 친구에게 관심이 없고 “엄마” “아빠” “싫어”같은 단순한 언어만 사용한다.

 이들의 변화는 ‘보듬음(音)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독일계 제약회사 베링거인겔하임에서 진행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국악실내악단 정가악회와 함께 발달장애 아동들 수준에 맞춰 국악 음악치료를 지원한다.

 베링거인겔하임은 재정 지원과 함께 자체적으로 봉사단을 꾸려 교육을 도왔다. 이후 발표회 형식으로 창작국악극을 무대에 올렸다. 이를 위해 9월 말부터 매주 금요일 음악치료사·자원봉사자·악기연주자 등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연습했다.

 보듬음 캠페인 음악치료사 조지은 씨는 “음악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가야금·거문고·해금·대금 같은 국악기를 연주하면서 성취감을 북돋아줬다”며 “긍정적인 경험을 반복하면서 자존감·사회성을 회복한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준비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안수정 씨는 “연습하는 시간보다 산만한 아이를 달래는 시간이 더 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습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변했다. 인사도 안하고 시선을 회피하던 아이들이 역할이 주어지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서 능동적으로 나섰다. 이날 공연이 100%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일부는 무대를 어슬렁거리거나 공연 도중 “아! 아!” 소리를 지르는 돌발행동을 했다. 하지만 기다리면서 보듬어주면 발달장애 아동도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상생활에서도 변화가 찾아왔다. 보듬음 캠페인에 참가한 박지영(가명·16)양 어머니는 “아이가 공연 후 ‘내가 해냈다’며 자존감이 높아졌다. 이제는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고 말했다.

 음악치료 효과는 뚜렷하다. 2008년 세종대 전진이 특수교육팀은 발달장애 아동 4명을 대상으로 16주 동안 매주 1회 30분씩 국악 음악치료를 진행했다. 그 결과, 활동 참여율은 치료 전 평균 39.3%에서 58.6%로 늘었다. 사회성을 평가하는 기초기능 점수 역시 9.1점에서 18.6점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 어눌하던 발음도 또렷해졌다.

 인체는 심장박동·호흡·뇌파 등 고유한 생체리듬이 있다. 본능적으로 음악에 공명한다.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들으면 맥박이 빨라지고, 느린 음악은 몸을 이완시킨다. 또 기억력·사고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을 자극해 집중력·학습능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 이런 이유로 모차르트 음악이 뇌기능을 좋게 한다는 ‘모차르트 효과’ 이론이 성행하기도 했다. 조씨는“처음에는 무의미한 소리로 여기지만 점차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회성·언어·인지능력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한편 보듬음 캠페인은 단순한 재정적 지원을 넘어 나눔의 의미를 실천했다며 ‘2013 행복더함 사회공헌대상’을 수상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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