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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달 탐사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항아분월’ 신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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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28면

“하얀 토끼는 봄가을 없이 영약을 찧고,
항아(姮娥)는 외로이 사니 누구와 이웃할까.”

창어·위투의 네이밍 전략

8세기 중국의 대시인 이백(李白)은 ‘파주문월(把酒問月:술잔을 붙잡고 달에게 묻다)’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한국 고전문학에서도 미인의 대명사로 곧잘 등장했던 항아 여신은 최근 다시 달로 날아가 품에 안았던 옥토끼를 내려놓았다. 토끼는 절구질을 하는 대신 달 표면을 이리저리 다니며 탐사한다. 중국의 달 탐사위성 ‘창어’ 3호와 달 탐사차량인 ‘위투’ 말이다. 창어(嫦娥)의 한국식 발음은 상아, 바로 항아의 별칭이다. 위투(玉兎)는 옥토, 말 그대로 옥토끼다.

창어 3호의 달 착륙 성공을 보며 한국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우주과학기술에 대한 부러움, 군사기술로 전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등. 여기에 문화적인 면에서의 부러움과 두려움도 추가돼야 할 것 같다.

명(明) 화가 당인(唐寅)의 ‘계수나무 가지를 든 항아’.

그간 우주와 관련된 것들은 하나같이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냉전시대 소련의 달 착륙계획 ‘루나’는 달의 여신을 뜻하고, 그에 맞선 미국 쪽 ‘아폴로’는 태양신의 이름이다. 영화 속 외계인의 단골 고향으로 등장하는 은하계 ‘안드로메다’는 바다 괴물로부터 구출된 공주의 이름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이 동아시아 신화, 그것도 달 탐사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항아분월(姮娥奔月)’ 신화와 ‘달 속의 토끼’ 전설을 자국의 우주개발계획 이름에 활용해 스토리텔링을 한 것이다.

‘항아분월’은 말 그대로 ‘항아가 달로 도망쳤다’는 뜻이다. 이 여신이 달로 도망친 까닭에는 여러 버전의 신화가 있다. 대표적인 버전은 이렇다.

항아와 남편 예(羿)는 본래 천상의 신이었다. 어느 날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라 세상이 온통 타 들어가자 예가 아홉 개의 해를 활로 쏘아 떨어뜨려 세상을 구했다. 문제는 그 해들이 천제(天帝)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진노한 천제는 예 부부를 인간으로 격하하고 지상으로 내쳤다. 예는 해결책을 찾아 신선들의 여왕 서왕모(西王母)를 찾아갔다. 서왕모는 예에게 영약을 주면서 반만 먹으면 지상에서 불로장생하고, 한꺼번에 먹으면 승천한다고 했다. 예는 영약을 아내와 나눠 먹기 위해 가져왔다. 하지만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항아는 남편 몰래 영약을 혼자 먹어 버리곤 하늘로 날아올라 달로 도망쳤다. 거기에서 남편을 배신한 벌을 받아 못생긴 두꺼비로 변했다고도 하고, 아름다움은 변치 않았지만 홀로 쓸쓸하게, 오직 달에 사는 옥토끼만 벗해서 지내게 됐다고도 한다.

항아가 배신자가 아닌 버전도 있다. 예가 서왕모에게서 영약을 얻어 온 뒤 예의 제자 중 탐욕스러운 자가 그 약을 노리다가 예가 집을 비운 사이 쳐들어왔다. 항아는 그를 막을 힘이 없었고 어떻게든 약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약을 삼켜 버렸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지며 천상으로 날아오르게 됐다. 하지만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더 멀리 가지 않고 달에 머물렀다고 한다.

어느 버전이든 신화 속에서 달을 향해 날아가는 항아의 이미지는 창어 3호의 움직임과 절묘하게 겹치며 달 탐사에 흥미로움과 낭만을 더해 준다. 이것이 요즘 유행처럼 강조되는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창어 3호에 대한 뉴스에서 “Goddess Chang’e”와 “Jade Rabbit”에 흥미를 느낀 외국인들이 구글링을 하면서 중국 신화는 물론 항아와 결부된 중추절(우리의 한가위에 해당하는) 풍속까지 배우게 된다.

이쯤 해서 달 탐사위성은 아니지만 한국의 위성 이름들을 살펴보자. 통신 방송위성은 ‘무궁화’, 다목적 실용위성은 ‘아리랑’…여기저기에 이미 수없이 쓰인 이름들이고 위성과는 딱히 관련없는 이름들 아닐까? 위성뿐만이 아니다. 이야기가 담긴 이름 짓기는 요즘 마케팅의 중요한 화두지만 공공 부문의 이름 짓기는 아직도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는 각국이 과학기술과 함께 문화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다. 중국은 ‘창어’를 달에 착륙시켰을 뿐 아니라 그 이름을 항아 신화에서 가져옴으로써 스스로 무서운 저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긴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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