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전시의 문화인들(8)-문인극(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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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 작가 단원들이 출연한 문인극은 『고향 사람들』을 첫 「스타트」로 55년1월15일 박진작 연출의 『무너진38선』까지 모두5회 공연을 기록했으나 작가단이 해체된 후에도 산발적으로 계속되어 72년까지 문인극은 모두 11회나 공연되었다. 『고향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대성황을 이루어 부산에서 두번째의 공연을 끝내자 작가단은 2년후인 54년1월15일 다시 연극을 시작했다.
건군 8주년 기념 예술 제전의 일부로 공연한 『돌아온 사람』은 정훈 장교인 이용상 소령의 창작으로 15, 16일 양일간 대구 문화극장에서 절찬을 받은 다음 장소를 서울시 공관(현 국립극장)으로 옮겨 반공 포로 석방을 기념하여 재상연 되었다.
이듬해인 55년에는 건군 9주년 기념 행사로 박진작·연출의 『무너진 38선』이 공연되었다. 이것이 종군 작가단의 이름으로 실시된 다섯번째의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군 작가단이 흐지부지된 후에도 문인극은 지난해의 『양반전』까지 11회나 공연된 셈이었다.

<이 육참총장이 위로 주석도>
다음은 문인극 관계자들의 이야기와 기록. ▲박훈산씨(시인·당시 창공 구락부회원·54) <1·4후퇴해서 꼭1년 되는 52년1월15일 대구 자유극장에서는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들만이 등장하는 특이한 연극의 막이 올랐어요. 김영수 원작의『고향 사람들』이라는 1막2장의 이 연극은 연습을 시작할 때부터 폭소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연출을 맡아보았던 원작자 김영수씨가 며칠 연습을 하더니만 『멋대로 하라』고 연출마저 포기하려고도 했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연습 첫날에는 어떻게 시간을 지켜 연습장에 모이더니 그 다음날부터 첫째 시간을 안 지킬뿐더러 몇 사람이 와서 기다리다가는 지루하다면서 한 두 사람 빠져나가고 마지막 사람이 도착해 보면 미리 왔던 사람은 없어지고 가까스로 연습이라고 할라치면 원작자를 보고 『여보 김형, 이 대사는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고쳐 하면 어떻겠소』하고 원작을 수정하려 드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연습이 제대로 될 턱이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이 연극은 실수는 많았지만 시민들의 절찬을 얻어 2일 예정을 하루 연기시켜 사흘간 공연했고 3월에는 부산에 있는 문인들의 간청에 따라 부산극장에서 이틀 동안 원정 공연까지 했습니다.
비록 실수 투성이의 연극이었지만 관중들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던 사흘간의 대구 공연이 끝난 다음 육군참모총장 이중찬 중장이 우리들의 노고를 풀어 주는 뜻에서 주석을 마련해 주었어요.
이 자리에는 물론 육군과 공군 소속 작가 단원들이 모두 참석했는데 마침 전국이 호전할 때라 모두가 근심을 잊고 술잔을 기울여 바야흐로 취흥이 도도할 때 누군가가『우리 군의 혁혁한 무공으로 말미암아 전국은 안정되어 간다』는 뜻의 발언을 했어요.
그런데 듣기에 따라서는 지휘관의 자랑 같은 느낌을 주었는지 옆에서 호탕한 웃음을 웃고 있던 조지훈이 선뜻 그 말을 받아 『오로지 그 공은 이름도 없는 산야에서 헤아릴 수 없이 이슬로 사라져 간 무등병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라고 소리칩디다.
서먹한 공기가 짤막한 사이 방안을 감돌 때 육군참모총장의 두 손은 어느새 세개의 별이 찬란히 빛나는 어깨에 닿는가 싶더니 양쪽별을 서슴지 않고 떼어버려요.
방 저편에 영관급이 시립하고 있다가 3성 장군의 별 떼는걸 보고 벌벌 떨면서 달려오는 영관에게 『아무 것도 아니야』하고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하면 되겠죠, 나도 이젠 무등병이 올시다』해요.
그때 우리들은 내심 즐거우면서 좀 보기 드문 인물이라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무등병을 자처하는 사람과 자리를 같이했으니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고 호탕하게 놀았던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요.>
▲양명문씨(당시 육군 종군 작가단·시인·현 국제대교수·59)<첫번째 문인극 『고향 사람들』에서 내 역할은 관중들에게 꽤 웃기는 것이었던 모양이에요. 나는 대학을 졸업한 청년으로 정옥의 신랑 후보가 되려는 역을 맡았는데 내가 정옥에게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관객들은 웃어요.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정옥을 만나서는 결혼하자고 조르는 것이죠.< p>

<『고향 사람들』 관중 크게 웃겨>
결혼해서는 빨간 지붕에 흰「페인트」칠은 해 놓은 아름다운 양옥집을 지어 나는 「바이올린」을 켜고 당신(정옥)은 「피아노를 치며 아기자기하게 살자고, 말하자면, 곱게 대학을 나와 전혀 고생을 모르고 지낸 청년의 역할이 그 무렵의 관중들에게는 웃음거리로 생각되었던 모양입니다.
원작대로, 연출가의 지시대로 연기를 했고 대사를 외웠지만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대사가 관객들을 웃기는 효과를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후에도 나는 이용상 소령의 원작『돌아온 사람』과 박진작 『무너진 38선』에도 출연했습니다.
『돌아온 사람』은 박영로씨가 주인공으로 공산군 중좌가 돼서 고향에 돌아왔을 때의 이야기를 엮은 반공극으로 김팔봉 김룡환 이덕진 김이석(작고) 정비석씨와 화가 이순재씨, 나 등이 출연했습니다.
피난 시절을 중심으로 이같이 문인들이 연극을 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65년에는 「드라머·센터」에서 본격적인 문인극을 했습니다.
세계 연극의 날 기념 행사로 65년3월27일 「드라머·센터」에서 1회 공연한 고 박승희 작 박진 연출 『이 대감 망할 대감』에는 내가 대감역을 맡았고 그밖에 정비석 복혜숙 김현림 박현숙 황운헌 홍윤숙씨 등이 출연했어요.>

<시인·소설가·만화가 총망라>
▲차범석씨(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49)<환도 후 문인들이 서울에서 벌인 연극은 59년5월10, 11일 양일간 을지로 입구의 원각사에서 공연한 『살구꽃 피다』(임희재 이보라 김상민 합작·이광래 연출)에서부터 거론해야겠습니다.
이보다 앞서 55년1월15일 시공관에서 했던 『무너진 38선』은 건군9주년 기념 행사로 종군 작가단의 이름으로 공연되어 종군 작가단의 문인극은 모두 5회에 달하며 그 후의 문인극이 6번이었으니 피난 시절까지 합하면 모두 11번이 됩니다.
『무너진 38선』에는 김팔봉 정비석 최정희 박영로 김이석(작고) 김용환 양명문 송지영씨 등이 출연했어요.
『살구꽃 피다』는 문인협회창립 10주년 기념으로 했고 그후 65년10월2일에는 문인협회와 연극협회 공동주최로 『춘향전』(박진 편극 이해랑 연출)이 문인들만의 출연으로 공연됐어요.
춘향전에는 춘향역에 최정희, 몽룡에 이종환, 월매에 조경희, 향단에 손소희, 방자에 추식, 변학도에 최인욱(작고)씨가 분하고 그밖에 정비석 박기원 김동리 조연현 장수철 전광용 박영로 박경리씨 등 40여명이 출연했습니다.
그 밖의 문인극은 65년3월27일의『이 대감 망할 대감』외에 65년4월3일 역시 세계 연극의 날 기념 행사로 「드라머·센터」에서 공연한 『두더지 시인의 환멸』(고 이수산작·서항석 연출)이며 최근의 문인극으로는 현대문학사 주최로 72년2월25, 26일 양일간 한국일보 소강당에서 있은 『양반전』(유현종 작 차범석 연출)인데 이것을 3월28일 춘천문화관으로 장소를 옮겨 다시 공연했습니다.>

<보조금 얻으려고 숱한 고생도>
▲구상씨(『전선문학』 창간호의 「종합예술제 여담」에서) 『영남일보의 「고십」대로 예술제는 대성황을 이루었으나 채산을 모르는 문인들의 놀음이라 결손을 냈다는 것은 사실이다.
3일 공연 수입이 1백40만원인데 대관료가 1백20만원이니 20만원이 공연 실수입이라 하겠다.
아무리 단막짜리라 해도 극이 있고 음악·무용 등의 종합예술제를 5백70만원이라는 경비를 갖고 충당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임을 기획자로서는 사전에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어서 우리는 도청과 시청, 그밖에 금융단을 상대로 응분의 보조금을 요청했었고 또 내낙까지 얻었었다. 그러나 허사였다.
예술제를 마치고 내낙된 곳을 역방하니 도에서 일금 30원을 실로「의연」해주었을 뿐 심지어 시 같은 곳에서는 10여차의 행각에 걸인시 하길래 시장실 문을 박차고 나오는 불쾌한 짓만 일으켰을 따름이었다.
종시 귀거래로 다시 돌아간 곳이 육군본부에는 면목이 없으니 행정참모부장 양국진 준장에게 개인적으로 통정하여 비합법적으로 차용해다 메운 것이 2백만원이었다. 이 예술제, 더욱이나 문인극에 동원된 문우들끼리, 아니 나부터라도 기념으로 만년필 하나씩이라도 나누어 가지려 했더니 모두가 파장에 소옥누몽이 되었을 뿐 오직 기획자측으로 문우들에게 늘 마음의 부채를 느낄 뿐이다.』
◇주요일지(l953년1월21일∼24일)
※21일 ▲공중전서 「미그」7대 격추 ▲이 대통령, 「아이크」에 취임 축하 전문 ▲김석관 교통, 창령호 침몰로 인책 사의
※22일 ▲「미그」기 11대 격추파 ▲한국 공군도 연일 출격 ▲중공 방송, 만주서 B-29 l대 격추 주장, 미국 정부는 중공 주장 부인
※23일 ▲「아이크」 첫 각의 주재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 예편, 후임에 「테일러」 중장
※24일 ▲중부 전선서 격전 ▲국부, 6명의 공산주의자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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