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영의 『신 일본사』수정 계기 일본문부성 「검정」의 문젯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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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년 봄 일본의 고등학교용 일본사 교과서에서 한·일 관계의 사실을 전례없이 개정, 가필하고 있는 점은 최근의 고대 한·일 관계사 연구 여의 고조와 더불어 일본학계의 동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 매우 주목되고 있다. 그 수정이 맨 처음 이루어진 교과서는 동경교대 이에나가(가영삼랑)교수가 집필한 『신 일본사』(삼성당판)이며 이것이 일본교부성의 검정을 통과한 것이다.
이 수정판 교과서는 한·일 합병이 『한국국민의 저항을 억누르고』강행한 것임을 밝혔음은 물론(기보)임군문제와 광개토대왕비문에 대해서도 약간의 수정이나 한국측 이의를 단서로 달아놓고 있다.
종래의 교과서는 대화정권 항목에서 한반도에 출병해 임나일본부를 세웠다든가, 경성부근까지 북상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군과 싸웠다고 기술했었다.
이에 비해 개정판에서는 『이 시기의 일본과 조선제국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최근 조선학계에서 현저히 다른 견해가 발표되고 있다』는 각주를 새로 넣고있다.
이는 광개토대왕비문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기에 관한 것이며 ▲일본측은 임군 일본 부설, 한반도 남부지배설 등을 내세워 왔고 한국학자들은 비문조작 주장을 제시해 허망된 견해임을 일축해 왔다.
즉 이 비문은 지금까지 「4세기께의 대화조정 일본 유일설=조선 남부 정복설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근거였으며 따라서 비문 논쟁은 이본 측 한·일 고대관계사관의 핵심부분을 뒤엎은 중요한 실마리가 됐다.
이렇듯 중요한 논쟁이 역사연구서도 아니고 정세만을 수록하는 교과서에 삽입되고 있느니 만큼 일본사 교과서의 전면개판을 위한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한 것으로 내다보인다.
특히 작년에 이진희씨가 『광개토대왕릉비의 연구』에서 결정적 조작주장을 제기했으나 대부분의 일본사학자들이 이에 침묵하고있는데 비해 교과서에서 이의가 제기되고 있음을 언급한 것은 놀라운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교과서는 또 「대화정권과 고분문화(조선반도에의 진출) 항목에서는 한반도 남부를 정복했다는 말 대신 「지배력을 수립」이라 수정하고 「일본군이 경성부근까지 북상」운운을 「중부지방」이란 표현으로 흐려놓았다.
그리고 최근세사의3·1운동부분에선 『만세사건이라 불리는 운동이 반발』이란 표현대신 『만세사건(3·1독립운동)』으로 바로 명시했다. 또 태평양전쟁 항목에서 한국인·대만인 중 군인이나 노동자로서 강제 복무돼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고 각주를 신설했다.
가영 교수는 이러한 수정심경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이른바 대 일본제국시대」에 성장한 세대로서 황국사관이 몸에 베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관의 잘못을 추상적으로는 인식했으나 이를 구체적으로 시정하기에 이르지 못했었다.
따라서 구판에서는 일본인으로서의 편견을 완전히 청산치 못했으나 최근의 새 지식과 일본인으로서의 자기비판을 통해 이번에 이러한 편견을 씻으려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검정이라는 제약 때문에 나로서는 미흡하다고 느끼는 점이 많으며 이는 앞으로 계속 당국과 대결, 시정해가겠다』. 즉 가영 교수는 왜곡된 사관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는 않았으며 다만 시정에는 첫 디딤돌이 되지 않겠느냐 기대되는 것이다.
과거 이러한 수정시도는 검정당국으로부터 번번이 제지당했으며 가영 교수의 『신 일본사』도 이른바 교과서재판에 계류 층이기 때문에 이번 검정통과가 더욱 뜻 있게 풀이되는 것이다. <계속> 【동경=박동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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