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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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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박동순 특파원】지금 일본경제는 지나친 수출증가에 대한 외부적 압력에다 더하여 내부적으로도 전 일본열도를 휩쓸고 있는 투기적 매점선풍에 휘말려 진통을 겪고있다. 매점자와 매점대상물이 극히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가히 「거국적」이라고 할 『일본 매점 주식회사』-그 매점의 실태와 배경, 문젯점 등을 정리해 보면-
일본 경제는 원래부터 매점작전이 일어나기 쉬운 체질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국내의 부존 자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도 소비사회로서의 체제가 정착, 무수한 선박·항공기 등에 의한 해외물자의 「피스톤」 수송으로 이를 간신히 지탱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열도를 더해가고 있는 매점선풍은 이러한 기본적 요인 이외에 국내외적으로 나타난 일련의 정세 변화에 의해서도 박차가 가해진 것이며 따라서 매점의 심도와 부작용도 전례없이 심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열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매점은 특히 올해 들어서부터는 매점물이 각종 원자재 등의 생산재에서부터 생필품과 심지어는 병원용 「가제」·붕대에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매점자 또한 대기업에서부터 일반국민에 이르고 있다.
대기업은 땅콩·목재·토지·주식·원모·원면·생사·다랑어, 일반소비자는 귀금속·미술품·토지·고서·우표와 도자기 등을 각자의 이식목표와 자금능력에 상응해서 사들이고 있으며 중앙정부 또한 세계적 자원부족 추세에 대비, 원유·원목 등의 매점 비축을 유도하는가하면 지방자치단체는 녹지확보를 위한 토지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월남 평화협정합의가 전해진 지난 1월24일, 동경 증권거래소의 「다우」식 평균 주가는 사상 최초로 5천「엥」대를 돌파했는데 이날 상·하오의 불과 4시간 동안에만 2천4백억「엥」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금이 주식매입에 동원됐다. 이는 자금이 남아돌고 있는 대기업들이 일제히 주식매입을 시작했기 때문인데 작년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에만 주요기업 등의 보유 유가증권은 구홍 5백95억「엥」, 이등충 4백87억「엥」, 삼정물산 4백78억「엥」등이 각각 늘어났으며 그 동안의 주식 매매익은 구홍 37억「엥」, 이등충 21억「엥」, 삼능상사 10억「엥」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목재값 3배 올라>
이들 대기업의 주식 매점은 매매익 이외에 산업구조 전환에 대비한 경영 다각화의 포석으로서 관련회사의 계열 지배를 강화키 위한 것이다. 일본 상사들은 또한 미국이 72년 중에 공급한 전체 원목 가운데 20%(4억「달러」를 사들였으며 국내에서도 각종 목재를 매점, 미국의 주택 호당 목재「코스트」가 1천2백「달러」나 늘어나게 하는가 하면 국내 목재가격은 2∼3배나 폭등케 했다. 이 때문에 야당은 국회에서 「각영」(전중 수상의 이름)주가는 떨어졌는데 왜 「각재」값은 폭등하느냐고 정부 당국자에게 육박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고급 원모 사상 최고가>
지금 일본 각지의 견직 공장들은 전면 「풀」가동, 견직물을 평상시보다 2∼3할이나 증산하고 있으나 값은 지난 두 달 동안에 거의 배로 폭등했다. 덩달아 생사 시세도 급등, 올해 들어 이미 65%나 상승했으며 모사는 30%가 상승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일본의 어느 상사는 호주에서 고급 원모를 사상 최고가로 매입, 『양복을 만들어 천황에게 진상하겠다』고 확언하여 세계를 아연실색케 하기도 했다.
이러한 생사 및 모사 파동도 따지고 보면 국제시세 상승과 수입전망 악화에 대비한 상사들의 매점 때문이며 결국은 「요꼬하마」·「고오베」 상품거래소가 생사 및 모사 거래를 중단하는 최악의 국면을 유발했다.

<붕대·가제 부족 소동도>
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들이 가장 즐기는 「다랑어」는 원양어선이 현지에서 이제 막 귀국하려 할 즈음에 무전을 쳐서 한 척 분을 통째로 3억「엔」에 매점하는 소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덕분에 다랑어 값은 지난 6개월간에 1.6배로 상승했다. 매점의 촉수는 주·부식물에까지 뻗어 쌀·찹쌀(생산량 55만t 중 추정 매점량 22억t)이 매점되고 콩을 사들여 두부 값이 폭등(35「엥」서 70「엥」으로) 하는가 하면 면사·면포가 매점됨으로써 일본의 병원들은 전시를 방불케 하는 붕대와 「가제」부족으로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 붕대가 1월의 1백70「엥」(5개들이)에서 지금은 3백50「엥」, 작년 여름께 1백30「엥」이던 「가제」(30㎝×10m)는 3백40「엥」, 심한 경우는 1천「엥」으로 사들인 병원도 있다.
이 때문에 병원 등은 한번 쓴 붕대를 소독 살균한 다음 세탁해서 다시 쓰는가 하면 왕진하던 의사가 환자의 상처에 쓴 「가제」가 너무 크다고 간호원을 나무라는 진경도 벌어지고 있다. 매점의 손길에는 논리도 없는 것 같다.
쇠고기 값이 뛰면 아직도 젖을 짤 수 있는 젖소가 매점돼서 육우로 공급되는가 하면 국토개발과 녹화운동에 편승, 가로수와 관상수들이 묘목단계에서 농장에 심어둔 상태로 매점되어 「매약제」의 표지가 붙어버린다.

<우표·고서 주부도 한 몫>
이런 추세로 가면 장차는 씨를 뿌린 묘포장 자체가 매점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러한 매점의 대열에는 기업과 일반 국민, 노인이나 어린이, 남녀의 구별도 없다.
26일에 첫 발매된 고송총 벽화 우표 발매 창구는 전날부터 철야의 장사진을 이루었는데 이것 역시 따지고 보면 취미 이전의 우표 투기의 여파.
줄지어선 어느 중학생은 『곧 매진돼서 값이 2∼3배로 뛴다고 우표 잡지에 쓰여 있어서 친구들하고 사러왔다』는 얘기다.
「시가라기야끼」로 알려진 도기의 고장, 자하현 갑하군 신악정에는 일요일이면 지갑을 움켜쥔 관광객들이 국도서 24㎞나 들어가는 산길을 무릅쓰고 살도, 학병과 찻잔 등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으며 동경의 어느 백화점이 마련한 중견화가 미술 작품의 전시, 직매회는 첫날 새벽2시부터 주부들이 화가 인명사전을 손에 들고 몰려들었다.

<한국 고미술 매입 붐도>
지금 동경 신전의 고서점가는 고서 매입 소동으로 「붐」에 들떠 있으며, 이에 편승하여 한국의 고미술품들이 요즘에 와서 부쩍 비공식「루트」를 통해 쏟아져 들고 있다는 어느 전문가의 귀띔이다. 지난 2월 중순, 미국의 어느 그림 경매에서 일본화상은 전전에 유산된 일본 화가의 그림 두개를 22만「달러」(추정시가 3만「달러」)와 10만5천「달러」(1만5천「달러」)에 사들여 장내에 환성을 불러일으켰다는 보도도 있다.
오는 4월1일부터 일본은 금 수입이 자유화된다. 이에 병행해서 백화점들은 3백만「엥」짜리 순금 위패에서부터 순금다솥·순금불상 등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순금 고화 모조품은 발매 1시간만에 매진됐으며 한 개 19만「엥」짜리를 10개, 20개씩 사간 사람은 대개가 의사·농가·상점주들이라는 백화점 측 설명이다.
싸다면 무엇이나 매점 하겠다는 매점자들의 의욕은 일본의 태국여인 매점(?)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매점의 형태는 일본 사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내외의 심각한 반발을 유발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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