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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안정과 수출규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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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정책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수지 악화도 불사하겠다는 정부방침이 굳어진 것 같다.
정부는 수출대종상품이라 할 수 있는 합판·철강제품·화섬류 등 8개 품목의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함으로써 내수공급을 원활케 하는 한편 동괴·신문 용지 등 15개 품목의 수입제한 조치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품귀현상을 해소시켜 가격상승 압력을 상쇄시키기로 확정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가 물가의 안정이라는 목표만을 고려할 때에는 불가피하다고 일단 인정할 수 있겠으나 국제수지 문제·정상가격 체계문제·소비구조 문제·자원배분 문제 등과 관련시켜 평가할 때에는 여러 가지로 보다 깊이 검토해야 할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물가안정정책의 목표로서 설정된 3%상승선이 국내외 경제여건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 문제를 다뤄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초 정책목표가 가정한 상대가격 체계가 그 동안의 내외여건 변화로 이미 낙찰된 이상 새로운 상대가격 체재를 형성시킨 연후에 안정 목표를 다시 설정하는 것이 논리적이며, 또한 현실에 부합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대가격 체계를 전제로 하여 안정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정책논리로서 납득키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모순을 확대시켜 더 큰 문젯점을 파생시킬 요인까지 내포하고 있다. 솔직이 말하여 수입 의존적인 산업구조하에서 수입「코스트」와 국내가격, 그리고 수출가격간에 정상적인 체계가 교란된 이 시점에서 수출규제는 수입감소로 반영될 공산이 큰 것이지 국내가격 하락으로 귀결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출규제가 생산의 감퇴로 연결된다면 이는 이중의 손실을 입게 하는 것이므로 이 점 엄밀히 그 득실을 분석해 보아야 하겠다.
다음으로 수출제한과 동시에 수입확대 조치를 취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국제수지 면의 압박은 가중될 것이다. 이 경우 국내 균형을 위한 국제균형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하겠는데 우리의 경제적 현실로 보아서는 국제균형의 확보가 더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겠는지 생각할 문제이다. 단순한 국내적인 불균형은 조세·재정·금리·소득 등 정책수단을 동원해서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이지만 대외 균형의 파괴나 악화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달러」파동요인과 국제적인 자원가격의 폭등요인이 곁들여 우리의 국제수지 적자폭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이 시점에서 수출제한·수입증대 조치를 취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다.
끝으로 수입「코스트」가 높아 가격상승이 불가피한 품목에 대해서 가격인상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보조금을 지급하고 물품세·관세를 인하해서 재정적자를 확대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냐 하는 점도 다시 한번 검토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소비촉진을 위한 보조금 지급과 다를 바 없을 뿐만 아니라 소비억제를 통한 수입억제라는 소망스러운 방향을 버리고 소비촉진을 통한 수입증대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을 선택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내외 여건의 변화로, 상대가격 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이 시점에서 새로운 상대가격 체계의 형성을 전제하지 않는 정책은 그 합리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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