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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립고교 정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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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학은 이번 고교입시제도 개선에 따라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되었다.
지난 69년 중학교 무시험추첨 진학제 실시로 한차례 시련을 당했을 때는 그래도 건학이념을 살릴 수 있는 고등학교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넘길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고등학교마저 학생들을 추첨, 배정받게 된데다 (인문계 고교) 사학의 자율성을 간섭하는 각가지 조치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실사학으로 지적되는 경우에는 학생배정 중지, 또는 폐교라는 최후 통첩마저 받게 되었으니 이만 저만한 고비가 아니다.
새로 마련된 고교 입시제도의 대전제가 되는 고교 평준화를 위해 문교부가 강구한 대부분의 조치가 사립고교에 해당되고 있는 것은 뚜렷한 건학이념에 따라 영재육성과 사회봉사에 헌신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학의 그늘에 숨어 일부 사학 경영자들이 영리 목적하에 비교육적으로 학교를 운영, 질적인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문교부는 곧 각계인사들로 학교평가위원희를 구성하여 부실학교 평가·사정을 하기로 했다.
올해안으로 매듭짓기로 된 사학정비작업은 부실사학에 대해 기한부 보완지시를 내리고 이 기간동안 보완조치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이 불가능할 때에는 학생배정 중지 또는 폐교 조치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교원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내년부터 새 입시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자격증이 없는 무자격 교사, 전공과 다른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과목상치 교사 등을 일제히 가려내기로 결정되었다.
문교부는 또한 이와같은 무자격·과목상치 교사가 앞으로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는 사립학교 당국자가 임명하고 사후에 문교부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는 사립학교법을 개정, 교사를 채용할 때는 사전에 문교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일반교사 뿐만 아니라 감독청으로부터 취임승인 취소를 받은 학교법인 임원 및 사립학교장에 대해서도 취임이 취소된 날부터 2년 이내에는 다시 취임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또 일부 사립고등학교는 경비절약을 위해 학급당 1.5인 정도 있어야 하는 교사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1시간에 2∼3백원 하는 시간강사를 채용하고 있는 것을 없애기 위해 교사정원 확보를 철저히 감독할 방침이다.
문교부는 교사의 질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립학교간의 교사 교류를 실현시키기로 했다. 당초에는 공·사립간에도 실시할 것으로 논의되었으나 우선 사립학교연합인사위원회를 만들어 사립학교간에서만 교류를 실현시킨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립고교에 이처럼 감독을 강화하는 대신 국고 보조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필요한 재원은 공립학교 학생들의 공납금을 사립학교 수준으로 인상, 그 차액을 사립학교 시설비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또 사립학교 교사들에게도 공립학교 교사들의 연금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와같은 각종 조치는 사학의 건학이념을 해치고 자율성을 침해하는 간섭이라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지금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훗날 더 큰 국민적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당위성을 설명하는 의견도 많다.
어떻든 이번 고교입시 제도 개선으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사학의 건학이념이 빛을 잃었고 신설 사립고교중 열의를 다해 영재육성에 힘을 기울이던 일부 사학의 손맥이 풀린 것은 사실이다.
부실사학을 정비한다고 하지만 부실사학의 문제는 사학 경영자 뿐만 아니라 관계당국에도 한편의 책임이 있다. 인가와 감독은 당국이 해왔기 때문이다.
교원의 질적 향상을 위해 마련했다는 채용사전승인제와 임원·교장 등의 2년 이내 재취임 금지규정 등은 사학의 상하에 걸쳐 자율성을 침해하는 큰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 사립학교간 교사 교류는 실현성이 극히 의심스러운 형편이다. 왜냐하면 현재 일부 사립고교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호봉이 높은 교사들을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해도 전에 있던 학교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봉급 격차가 크고 교사 자신의 종교 또는 학교의 종교적인 차이 등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에 대한 국고 보조도 공립고교 공납금 인상 차액을 사립고교 시설비로 전용한다는 것인데 시설비도 증요하지만 현재 사립고교 수입의 90% 정도가 인건비로 지출되는 현상이어서 교사들의 봉급 지원이 더 절실한 형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당국은 지난 중학교 무시험진학 추첨진학제 실시때도 사립학교 지원을 다짐했으나 말로만 그치고 공수표를 뗀 바 있어 아직은 국고 보조 지원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며 숫적으로 우세한 사립학교에 열세인 공립고교의 차액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가 요망되고 있다.
사학의 준공립화가 되기 마련인 이와같은 새 고교 입시제도와 그에 따른 시책으로 사학의 특수성이 사라지고 틀에 박힌 획일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것 보다 개성있는 교육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양정고교 엄경섭 교장은 사학의 자율성이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사립고교 당국자들은 곧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토론하여 내놓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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