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혈통, 김정은만 보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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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비서 김경희(67)는 17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빠 김정일의 2주기 추도대회였는데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같은 행사에서 그는 서열 여덟 번째로 호명됐었다. 그는 닷새 전 조카 김정은(29)에 의해 전격 처형된 장성택(전 국방위 부위원장)의 부인이다.

 이설주는 이날 김정은의 팔짱을 끼고 나타났다. 지난해처럼 추도대회에는 불참했지만 김정은이 추도대회에 앞서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을 때 동행하는 장면이 북한 관영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설주가 ‘리얼타임’으로 활동하는 장면을 북한 언론이 보도한 건 62일 만이다. 조선중앙TV가 얼마 전 이설주가 등장한 기록영화를 내보내긴 했지만 1년 전에 찍힌 모습이었다.

 이날 김정일 사망 2주기는 장성택 숙청 사태를 털고 김정은 집권 3년차로 접어드는 전환점이었다. 그런 날 김경희·이설주의 명암이 엇갈렸다.

 김경희는 남편 장성택이 반당·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되면서 거취에 눈길이 쏠렸다. 평양 권력의 변동 가능성 때문이다. 지난 13일 사망한 김책의 아들 김국태 장례위원회에 여섯 번째로 이름을 올리면서 건재를 과시하는 듯했던 김경희가 추도대회에는 불참한 이유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남편에 대한 무자비한 사형집행에 불만을 품었을 가능성과 함께 정신적 충격으로 참가가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지난 9월 이후 공개활동이 없기 때문에 중병을 앓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마침 김정은이 추도대회에서 내내 굳은 표정을 보여 혼선이 가중됐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경희의 불참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노출시킨 것”이라고 봤다. 반면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을 유일영도자로 부각시키려 후광 역할을 한 김경희를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이설주는 공개적으로 재등장했다. 검은 투피스 정장 차림의 이설주는 레드카펫이 깔린 계단을 밟으며 금수산태양궁전 내부에 들어갈 때 잠깐 김정은의 팔짱을 끼기도 했다. 한때 몸담았던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10여 명이 성추문에 연루돼 공개처형됐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이설주는 대중 앞에 나오지 않아 여러 가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일단 이설주의 신변에는 큰 이상이 없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로 김정일 3년상을 마쳤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만 2년째 기일을 3년 탈상으로 여긴다”며 “다만 김일성 사망(1994년 7월)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년 더 연장토록 해 97년에 탈상했다”고 설명했다. 3년 탈상(脫喪)은 곧 새로운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특히 조선중앙TV로 생중계된 72분간의 추도대회는 평양의 신권력 지형을 보여줬다. 김경희·장성택 부부가 빠진 추도대회의 중앙 주석단(단상)은 최용해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을 위시한 숙청 주도 세력의 차지였다.

 최용해는 김정은 바로 왼쪽 옆자리에 앉았다. 최용해는 결의연설도 대표로 했다. 그는 연설에서 “우리 혁명무력은 김정은 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르며 어떤 풍파 속에서도 오직 한 분 최고사령관 동지만 받들어 나갈 것”이라고 충성을 서약했다. 최용해 옆으론 이영길 군총참모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등 김정은 시대 들어 부상한 신군부 인사가 자리 잡았다.

 김정은 오른편으로는 김일성 때부터 3대에 걸쳐 권력을 누려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외에 박봉주 내각 총리 등이 모습을 보였다. 군부 공안통이 주축인 신권력이 왼쪽, 김일성 가계의 오랜 공신들이 오른쪽으로 포진해 묘한 대조를 이뤘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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