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IPTV 덕분인가, 부활하는 에로영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야한’ 영화가 돌아오고 있다. 과거 비디오 시장의 몰락과 함께 저물어가던 에로영화 시대가 다시 열릴 듯한 분위기다. 새로운 부가판권 시장, 즉 IPTV(인터넷 프로토콜 TV)를 비롯한 디지털방송이 부활의 진원지로 꼽힌다.

 올 들어 11월까지 개봉한 한국 에로영화는 총 32편. 2011년 6편, 2012년 8편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다. 과거와 달리 다양한 장르 교배를 시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에로틱 호러 ‘꼭두각시’부터 에로와 미스터리가 혼합된 ‘야관문: 욕망의 꽃’, 에로와 다큐멘터리를 연결한 ‘아티스트 봉만대’ 등이 그 예다. ‘미스 체인지’처럼 몸이 바뀐다는 이색 설정도 있다.

 ‘미스 체인지’를 만든 브런치 메이트 필름의 윤동근 이사는 “성인방송·웹하드 등 음지에만 머물렀던 에로영화가 양지로 나오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에 맞춘 저예산 상업영화로 하나의 장르를 구축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IPTV에서 에로영화는 극장보다 반응이 뜨겁다. 한 예로 ‘꼭두각시’의 극장 매출액은 약 1억 원에 그쳤지만, IPTV 매출액은 5억 원을 넘어섰다. 올레tv를 운영하는 KT의 문지형 과장은 “에로영화의 매출 규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올해 올레tv 전체 영화 매출액 중 에로의 비중이 13%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에 비해 2%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IPTV 가입자수는 올 11월 현재 815만 명. 국내 디지털방송(디지털케이블TV·위성방송 등) 전체의 절반쯤을 차지한다. 영화·방송 다시보기 등 VOD서비스 이용도 활발하다. IPTV의 경우 VOD 이용이 가입자 10명에 3명 꼴(방통위 2012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이다.

 에로영화 붐은 극장 개봉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올 11월까지 개봉한 한국영화는 총 168편. 한 달 평균 15편 꼴이다. 문제는 상영관 상황이다. 전국 스크린 수는 현재 약 2500개에 달하지만 저예산 영화가 상영관을 많이 잡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야관문: 욕망의 꽃’ 배급사 마운틴픽처스 이재식 대표는 “규모가 큰 영화가 많게는 1000여 개 스크린을 장악하는 현실에서 저예산 상업영화가 극장에 들어갈 틈이 점점 좁아진다”며 “중소 제작사들의 선택한 생존전략이 IPTV 등 부가판권시장을 겨냥한 에로영화”라고 말한다.

 에로영화 르네상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아티스트 봉만대’의 봉만대 감독은 “에로영화들이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건 영화의 품격을 고려하지 않고 B급 정서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IPTV 등 부가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디지털 핑크무비’의 성장세가 감지된다”면서도 “에로영화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육체에만 매몰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시대를 담을 수 있는 에로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IPTV 업체 측은 에로영화에 대해 자체 심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myLGtv를 운영하는 LG 유플러스 신경찬 과장은 “극장 상영관 20개 이상을 확보한 작품,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작품 등 기준에 합당한 작품만 서비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진흥위원회 양소은 연구원은 “부가판권시장에서 에로영화의 시장성은 검증됐다. 영진위가 집계하는 IPTV 영화 VOD순위에서도 에로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며 “포화상태에 달한 극장을 IPTV가 대체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용진 기자

◆에로영화=남녀의 성애를 다룬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노골적인 성묘사에 집중하는 포르노그래피와 구분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