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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엠마누엘학원원장 방영자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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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학생시절에 농촌운동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꿈을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흔하지않다. 방영자씨(32)는 기나긴 노력 끝에 그꿈을 이룬 사람중의 하나이다. 평택군팽성면에서 출생, 국민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정신여중에 진학했던 그는 방학때마다 고향을 오가는동안 『시골사람은 너무도 가엾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되었다. 그리고 이대국문과를 졸업할무렵에는 이미 『농촌사람을위해 무슨일이든 해보겠다』는 결심이 굳어져있었다.
63년12월23일 대학졸업식이 끝나자 그는 바로다음날 고향으로 내려가 그가 시작하려는 사업을 어디서부터 손대어야할지 밤새도록 궁리해보았다.
지금부터 꼭10년전의 「크리스머스·이브」를 그는 전기불도 없는 고향집에서 부푼설계로 새웠다.
『오래굳혀온 결심이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욕심만 컸지 제힘이 너무작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어요. 그래서 우선시작한것이 사랑방에 학교에 못가는 동네아이들을모아 글을 가르치는 일이었어요.』
오랜 풍마로 잔주름이 늘어난 방영자씨는 이렇게 시작하던 무렵을 회상한다. 지금은 교실 4개로된 교사·교회·탁아소, 그리고 목장까지 갖춘 「엠마누엘」고등공민학교의 이사장이 되었으나 그동안의 고생은 이루 말할수 없는 것이었다.
최초의 장벽은 아버지의 이해를 얻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5남매를 모두 서울에서 공부시킬만큼 경제적으로나 정신걱으로 여유가 있는 분이었으나 대학까지 나온 딸이 농촌운동의 선구자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알맞는 남편을 골라 순탄한 주부로서 살기를 아버지는 희망했다. 더구나 온집안을 어지러놓는 개구장이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일에는 질색이었다.
『아버지는 반대하다못해 솔밭 1만5천명을 저에게 빌려주시고 아이들을 사랑방에 끌어들이지는 말라고 하셨지요. 아이들과 저는 3km나 떨어진 갯벌에서 돌을 주워다가 방한간을 세웠어요. 집을 짓는동안 제힘만으로는 힘들겠다, 농대를 나온 남자의 도움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어요.』 혼자 일한지 10개윌만인 64년가을 방씨는 수원의 서울농대에 찾아가 『농촌운동에 뜻이있는 졸업생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름다운 처녀의 이 당돌한 구인광고는 곧 대학신문의 「가십」난에 소개되었고 축산과3학년이던 이충남씨의 응모를 받기에 이르렀다.
『신문을 본후 나는 곧 이솔밭 한쪽의 작은 교실로 찾아왔었음니다. 30여명의 아이들이 모여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불우한 환경속에서도 얼마든지 큰 사람이 될수있다」는 내용의 얘기를하는동안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교실안에서 자취를하며 수원까지 통학을 하게 되었죠.』
이씨(33)는 그후 33년동안 방씨의 훌륭한 동지로 함께 일했다. 만난지 5년후인 68년 이들 두 젊은이는 결혼으로 더욱 굳은 동지가 되었고 지금은 중매(5) 신매(3) 두딸을 두고 있다. 축산과를나온 전문가가 이일에 뛰어들자 1만5천평의 솔밭은 눈에띄게 달라져갔다. 주변의 9천평 임야가 개간되어 여기 보태졌고 곧 5마리의 젖소가 뛰어노는 목장이 생겼다. 둘의 결혼비용과 축의금을 모아 교사도 새로 지을수 있었다.
젖소들은 곧 풍성한 우유로 학교의 재정을 돕기 시작했다. 현재 목장에있는 5마리의 젖소들은 매일 1백25kg의 우유를 보급해주고 있다. 이수입은 1인당 월5백원의 수업료를 받고 있는 고등공민학교의 운영을 돕고 있다. 우유만으로 부족할때는 젖소를 매년 한두마리씩 팔기때문에 6년전의 7마리가 많은 새끼를 낳았지만 지금 5마리밖에 남지않았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지난10년동안의 졸업생은 5백여명에 이르고있다. 이들중에는 대학에 진학한 사람도 있다. 현재는 1, 2, 3학년에 1백여명이 다니고 있으며 월1만5천원의 보수로 3명의 교사가 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농촌운동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을 우리는 가장 크케 봅니다. 어린시절의 교육을 통해 이들을 좌절속에 시들지않도록 보호하고 꿈을 심어주어야만 새로운 농민상이 탄생될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교사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꼭 대학을 나온분이 아니더라도 뜻있는 분들의 협조를 바랍니다. 이들은 현재 비어있는 2명의 교사를 새학기전에 맞아들일 계획이다.
『10년동안 고생도 많았읍니다. 그러나 젊은이들로서 해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다른 젊은이들에게 자신있게 권하고 싶습니다. 혼자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부부가 힘을 합친다면 남을 위해서 살뿐아니라 자신의 인생에도 성공을 거들수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나이에 거둘수있는 최대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자부합니다.』<평택=장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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