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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한국의 멋과 맛 그 보존을 위한 「시리즈」(13)경주 법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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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예부터 궁중에서나 화랑들이 즐겨 마셔왔다는 경주법주는 신라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고유의 국주.
이·최·손·설·정·배씨 등 씨족부락국가가 형성되면서 이른바 6부촌인 신한시대 때 해마다 추수를 끝낸 주민들이 한겨울 사랑방의 기호품으로 토함산기슭에서 솟아나는 옥수와 찹쌀로 빚어낸 술이 경주법주의 시초였다는 내력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법주의 본고장인 경주에서도 노르께한 빛깔, 향긋한 냄새와 함께 찹쌀알이 동동 뜨던 이름 그대로의 법주는 찾아볼 수 없고 관광객에게 그 이름을 빌어 내놓는 술이란게 거의 주정으로 빚은 화학주.
『정통법주의 제조비법을 이어 온 사람들이 드문 탓도 있겠지만 주세법에 묶여 순곡주를 빚을 수 없는 탓』이라고 가문에서 2백50년 동안 법주를 빚어왔다는 최영식씨(43·근화여중교사)의 설명이다.
교동의 최부잣집으로 알려진 최씨집은 나대말 대학자이던 고운 최치원의 29대 손으로 원래 반월성쪽으로 30리쯤 떨어진 고허촌(속칭 들산)에 살았으나 21대 때부터 보석궁터인 이곳으로 옮겨 살아오면서 법주를 가주로 빚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여호의 최씨 마을에서도 지금 그 비법을 보유하고있는 사람은 최씨의 처 김시자씨(42) 외 몇 명 정도. 20년 전에 시집와 시어머니 박재난씨(76)로부터 법주를 빚는 비법을 익혀왔다.
술을 빚는 과정은 짚불로 독안을 그을려 잡균과 잡냄새를 완전히 없앤 뒤 밀을 통째로 맷돌에 갈아 두터운 밀기울을 가려내 누룩을 딛는 것으로 시작된다.
디딘 누룩은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발효하면 6개월간 항아리 속에 넣어뒀다가 밑술용으로 쓰게된다.
법주는 밑술과 윗술의 두 가지 과정을 밟게된다. 밑술은 처음 찹쌀로 걸쭉하게 죽을 쑤어서 이미 디뎌논 누룩에 버무려 넣는다. 이때 분량은 누룩과 찹쌀이 3대1의 비율 버무려 넣은 술독을 방안온도가 섭씨20도 이상 되는 아랫목에 두고 두터운 이불로 싸두면 1주일만에 발효한다는 것.
그다음 윗술을 담기위해 찹쌀로 술밥(고들밥)을 찌는데 찹쌀은 밑술의 분량만큼 시루에 넣고 떡을 찌듯 증기로 삶아 얄팍하게 돗자리에 깔아 식힌다.
술쌀이 너무 빨리 식지 않도록 은은한 바람결을 골고루 맞게 손바닥으로 저어가면서 2시간 남짓 식혀 온기가 채 가시기 전에 거둬들인다.
이 과정에서 재료를 다듬는 손의 맛과 힘이 작용하는것은 다른 토속물에서의 경우와 같다.
『밑술과 윗술을 섞은 뒤 토함산의 맑은물을 끓여 부으면 죽이 끓는 듯한 소리가나며…』사흘뒤 아랫목 깊숙이 이불로 싸두었던 술독은 웃목으로 옮겨지고 한달뒤 대나무를 거미줄처럼 엮은 용수를 독속에 넣으면 맑은 법주가 솟아오르기 시작, 밑에는 밀기울과 찌꺼기만 남는다.
이때 주정도는 15∼20도. 호로병에 담아내다 약과나 수정과 또는 보쌈김치를 곁들여놓으면 향긋한 술냄새에 감미로움이 입술에 감아든다고한다.
『구한말 때 이강공이. 민간인으로는 육당 최남선, 인촌 김성수, 춘원 이광수씨 등이 반월성에 구경올 때면 꼭 들러 자시곤 했었지요.』
40간 고옥의 절반이상을 차지한, 어른키 만큼이나 큰 30여개의 술독은 오래 전부터 맹물로 채워져 있다. 갓 시집와 시조부상을 치를 때 찹쌀50가마를 술로 빚었던 풍요함이나 술맛을 못 잊어 찾아주던 얼굴들이 한낱 추억으로 아련해지는 것 못지 않게 오랫동안 술을 빚지 못해 솜씨가 무디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을 안타까와한다. [글 대구 이용우기자|사진 경주 최은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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