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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산품의 맛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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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언젠가 「사르트르」가 미국 문명을 비판하면서 미국에는 『풍족함은 있어도 풍요함은 없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럴 듯도 한 말이다.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조금도 일상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만큼 물건들은 풍족하다. 그러나 「뉴요크」에서 먹는 「햄버거」의 맛이나, 「시카고」의「햄버거」 맛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몹시 편리할지는 모르나 맛이나 멋이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방에 따르는 특산품이나 토산물이며 하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지방에 따르는 특산품이 많고 「파티」의 「레스토랑」마다 음식 맛이 다르고 「코피」맛이 다른 「프랑스」가 자랑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요새 본지에 『사라져 가는 한국의 멋과 맛』이라는 글이 연재되고 있다. 창호의 생강엿, 인제의 토종꿀, 나주의 녹차, 순창의 고추장… 모두 각 고장의 특산품이자 자랑거리다.
이런 것들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어디를 가도 공산물들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여행자를 위한 강릉의 선물 가게에서나 경주의 선물 가게에서나 팔고 있는 것은 모두 똑같다. 어쩌면 서울에서 만들어낸 것들인지도 모른다.
기차를 타고 서울서 부산까지 가는 도중에 사 먹는 도시락은 어느 역에서나 똑같다. 우리 나라가 모두 일일 생활권 안에 들게 되었기 때문에서가 아니다. 그저 고장이 무너진 것이다.
18세기 때의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를 보면 옛날에는 무척이나 특산물들이 많았나 보다. 행주의 웅어, 평안도 성주의 금사연, 남양과 안산의 월화라는 이름의 감, 울릉도의 울릉도, 충남 남포의 오석연… 헤아릴 수가 없다.
이 모두가 이제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제각기 모두 자기네 고장이 가장 애틋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고장마다 자랑스러운 맛이 있고, 멋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맛과 멋이 사라질 때 자기네 고장을 아끼는 마음씨도 사라져 가는 것이나. 물론 지방의 특산품이나 그 특유의 맛을 갖는 「로컬·칼라」가 없어진다는 것은 문화가 그 만큼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지방 사이의 장벽이 그만큼 없어진 것이기도 하다. 좋게 보면 그렇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말하는 풍요한 맛은 사라져가고 있다. 8도를 누비는 나그네길에서 이 고장 저 고장의 술맛에 혀를 굴리던 선조들의 맛과 멋만은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영욕이 뒤섞이고 가난에 쪼들린 우리네 역사에 대한, 또는 그런 역사를 만들어낸 선조에 대한 야릇한 애정이랄까 향수랄까. 그러나 이런 것 때문에서 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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