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총명하고 지혜로운 여성|「처칠」의 어머니 「제니」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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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874년 11월30일 일요일 상오1시30분 영국남쪽 「옥스퍼드셔」에 있는 「블렌하임」궁전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말보로」공작 가문을 이을 이 아기의 이름은 「윈스튼·레오나드·스펜서·처칠」.
후에 영국 전체를 한 손에 쥐게 되었고 양차대전시는 세계의 운명을 등에 짊어지기도 한 그지만 탄생시 「런던·타임스」지는 단 두 줄로 「윈스튼」의 탄생을 이렇게 알렸다. 『11월30일 「블렌하임」궁전에서 「레이디·랜돌프·처칠」, 첫 번째 사내아이를 분만하다.』
모든 위대한 인물을 이야기할 때 그의 어머니에 관한 것을 빼놓을 수 없듯이 「처칠」경의 경우에도 그의 어머니인 「제니」여사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더욱이 이 「제니」여사는 단순히 「처칠」경의 어머니에서 끝나지 않고 당대에 『가장 총명하고 예쁘며 영향력을 구사한 여성』으로서 기록되기 때문에 「처칠」의 어린시절 얘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제니」 여사는 미국여성으로서 1874년 4월「파리」에서 「랜돌프·처칠」경과 결혼했다.
『돈은 없으나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결합』이었다고 후에「윈스튼」이 회고한대로 이들 부부는 평범한 부부들과는 다른「로맨틱」한 생활을 했고 그런 속에서 「윈스튼」을 낳았다. 「제니」여사는 영국식으로 유모에게 「윈스튼」을 맡긴 초기에는 그의 아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갖지 않았다.
「윈스튼」에 관해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여지는 『「제니」여사는 그의 아들이 하나의 남자가 되려할 때부터 그에게 애정을 쏟았다』는 얘기는 어느 정도 진실이다. 「제니」여사는 「윈스튼」이 『자각의 나이』로 들어서자 그녀가 가진 커다란 두 개의 장점인 용기와 정열을 아들을 위해 휘두른 힘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이 용기와 정열의 소산이다.
「제니」여사는 단순히 아들을 위한 희생적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여성』(윈스튼부인론)으로서 아들에게 영향력을 주고 아들을 도와주었다.
국제적인 문학잡지의 편집자며 출판자, 「보어」전쟁시 병원선의 조직자, 직업적인 「피아니스트」, 극작, 소설에도 재질을 보인 작가며 「리포터」,국가적인 전시회나 공연을 주재하는 솜씨와 혼자서는 극장에도 못 가는 당대여성들과는 달리 정치운동에 나서는 등과 같은 다방면에 대한 재능과 용기를 갖고 「제니」여사는 아들의 책 판매원으로부터 선거운동자, 전쟁시 전략을 짜는 아들의 조언자 노릇을 했다.
그녀는 「랜돌프」경이 1895년 사망한 후 두 번 결혼했는데 63세 때는 그의 아들 「윈스튼」보다 나이가 어린 청년과 결혼한 일도 있다. 이 결혼때 타고난 그녀의 미모는 나이를 극복, 『크게 어색하지 않은 신랑신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제니」여사는 「처칠」경에 의해 훌륭한 어머니로 평가받기 전 이미1908년 「커런트· 리터러처」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앵글로색슨」여성』으로 평가받았으며 혹자는 「제니」여사가 남자로 태어났었다면 틀림없이 『「처칠」이상의 업적을 남겼을 것』이라고 평하고있다. <AFP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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