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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의 한국인력|계약전후(1)|장명수 기자 현지 답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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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독에 와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취업자의 수는 전 서독 취업자의 1할이나 되는 2백13만명을 넘어서고 있다.(71년 말 통계) 이중 한국에서 온 「게스트·아르바이트」(초청취업자)는 9천명(72년10월 현재)으로 외국인 취업자의 0.4%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1963년2백36명의 광부들이 첫 발을 디뎠던 독일은 이제 공부나 간호원뿐 아니라 각종 기능공들이 진출함으로써 우리 나라 인력수출의 제1요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9년 동안 30배가 넘고 인력의 증대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서독에서 일하는 한국인 취업자들에게는 너무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서독 안에 자리를 넓혀가고 있는 우리 취업자들의 현황과 문젯점, 그리고 현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해결 방안 등을 취재해서 엮어 본 것이다.
『좋은 환경 속에서 잘 지내고 있으며 낭비만 안 한다면 돈도 꽤 모을 수 있다』는 것이 서독에서 일하는 우리 나라 취업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미국에 비해 서독의 임금수준은 낮은 편이지만 그 대신 생활비를 적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저축하는 액수는 미국 안의 취업자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좀더 들으면 근로조건, 숙소시설, 봉급액수 등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있는 것을 알게된다. 여기대해 「본」주재 한국 대사관의 노무관들은 『계약서를 잘 읽지 않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버릇 때문에 생기는 일이지, 속았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계약서」에 대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기 위한 그 수많은 절차로 머리가 복잡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대부분 학력이 높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계약서의 검토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계약서의 검토는 현지의 노무관이나 본국의 노동청에서 대행해 주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생활수준이 우리 나라보다 높은 나라이므로 노동자들을 위한 숙소는 물론 우리 나라 숙소와 비교할 수 없이 좋다. 그러나 더운 물 「샤워」가 있다든지 「개스」 「쿠킹」시설이 있다든지 하는 기준으로 만족하라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모든 기준이 합격이면서도 살기에 불합리한 숙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전기제품회사인 「카·베·우」숙소에서 살고 있는 우리 기술자들은 같은 불평을 말하고 있다. 한국인 기술자 1백명이 모여 사는 이 숙소는 조립한 목조 건물로 「스팀」난방에 목욕 세탁시설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 3평 반정도 크기의 방에는 2개∼4개의 침대가 2층 구조로 매어져 있다. 부엌에는 공동으로 쓰는 냉장고 「개스」곤로 각자의 찬장 등이 마련돼있어 음식 만들어 먹기에 불편한 점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텔레비전」이 있는 휴게실도 있고 탁구대도 있다.
그러나 여럿이 쓰는 작은 방은 이들의 살림을 처량하게 나타내준다. 외관이 처량할 뿐 아니라 각자 근무시간이 다른 여러 명이 한방에서 자고 깨야하는 불편은 이들의 수면과 건강에 영향을 주고있다.
『하루 3교대로 공장은 24시간 돌고 있다. 낮12시 근무를 위해 한 명은 푹 자야만 하는데 위 침대에서는 새벽6시 근무를 위해 4시부터 일어나 소리를 낸다. 다른 사람이 잠자고 있으면 너는 쉬는 저녁이라도 불을 켜지 못해 책 한 권 못 읽는다. 목조건물이라 위층에서 누가 걸으면 삐걱 소리가 요란하다. 이렇게 하루 이틀 아니고 어떻게 3년을 살겠는가.』
만나는 「카·베·우」기술자마다 이 숙소시설을 와서 살펴보지도 않고 서류에 적힌 기준만을 보고 계약을 맺도록 한 노무관들을 원망하고 있다. 2명, 혹은 4명이 쓰더라도 각자 내는 방 값은 매달 90「마르크」(1만2천원)인데 이것은 「베를린」시의 기준으로 볼 때 너무 비싼 값이라는데 독일인들조차 이의가 없다.
물론 강제로 이 숙소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90「마르크」면 혼자 쓰는 방을 구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방은 귀하고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얻기는 힘들다.
이들 「카·베·우」기술자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좋은 기숙사에서 방 하나씩을 쓰며 살고 있는 간호원들도 계약상의 문젯점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문제는 이들이 한국을 떠나기 전 그들이 어떤 종류의 병원에서 일하게 될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개인 병원인지 종합병원인지 아니면 노인병원인지에 따라 그 일 내용이 너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독일에 도착해서 노인병원에 배치된 간호원들은 가장 큰 「쇼크」를 받게된다. 3년 계약기간을 못 채우고 병원을 옮기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베를린」 「샬로텐부르크」국립노인병원의 수간호원인 「플린트」여사는 노인병원에서 일할 간호원은 따로 모집해 보내주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호스피탈」이라면 그냥 아픈 환자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입원해있는 노인들만을 위한 병원으로 일반 「크랑겐하우스」와는 다르다. 대부분 반신불수 뇌일혈 정신 박약 등으로 앓고 있는 장기환자들이므로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우선 체력이 강해야 한다. 「유럽」여자에 비해 체력이 달리는 한국간호원들은 환자들을 부축하거나 옮길 때 고통을 받게 된다. 한국은 특히 거리가 멀어 중간에 돌아가기도 힘들므로 이 노인병원 간호원만은 미리 일의 내용을 알리고 따로 모집하는 게 좋을 것이다.』
「플린트」여사는 이 병원에 70년부터 한국간호원이 오기 시작했는데 금년에 오는 간호원들도 일의 내용을 모르고 와서 똑같은 고통을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계약서의 검토에서 전후가 뒤바뀐 문제들은 이밖에도 많이 발견된다.
차례
①계약전후 ②아내와 나날을 ③송금날 ④고독한 천사 ⑤고국에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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