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의 대북 정보 시스템 이상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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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실각설의 파장이 정부의 대북 정보 시스템 문제로 옮겨붙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제2인자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의 거취는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국가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관계 부처 장관들마다 말이 다른 데다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걱정스럽다. 대북 정보를 수집·평가·분석·공유·확산하는 정부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야 간사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장성택 실각설을 공개한 다음 날인 4일, 주무 부처 장관들은 국회에서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장성택의 소재를 알고 있지만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전날 국정원이 “실각 후 자취를 감췄다”고 밝힌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류 장관의 발언에 관심이 집중되자 통일부는 추가 설명을 통해 “신변에 특별한 이상이 확인된 것은 없다는 뜻”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김관진 국방장관의 말은 다르다. 같은 날 국회에서 김 장관은 장성택의 실각 여부에 대해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실각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시기상조란 얘기다. 국정원은 실각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고, 국방부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하고, 통일부는 신변에 이상이 없다고 하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린다.

 더구나 김 장관은 국정원의 장성택 실각설 공개를 미리 알았느냐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사전에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국정원이 관련 부처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개했음을 시인한 셈이다. 장성택 실각설 정도의 중요한 정보라면 마땅히 주무 부처 간의 긴밀한 사전 조율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국정원과 통일·국방·외교부가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평가한 뒤 공개 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주도했어야 할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 문제로 관계 부처 장관들이 참석하는 국가안보회의조차 열지 않았다. 그러니 국정원이 최종 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정보를 흘린 의도와 타이밍에 의심의 눈길이 쏠리는 것이다.

 정보를 독점하고자 하는 것은 정보기관의 속성이다. 정보의 수평적 공유가 잘 안 되는 이유다. 정보기관 간 경쟁심과 공명심, 정보에서 차단된 기관의 소외감은 종종 엉뚱한 부작용을 낳는다. 그래서 대북 정보 시스템에서 국가안보실의 통합조정 기능이 중요한 것이다. 이 점에서 김장수 실장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부의 대북 정보 능력은 국가신인도와 직결된 문제다. 이미 국정원은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의 하나 장성택 실각설이 오보로 드러날 경우 한국은 국제사회의 양치기 소년을 각오해야 한다. 대북 정보 시스템의 쇄신이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