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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제27화 경·평 축구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원정>
조선축구단의 일본원정 때 돈이 모자라 애를 먹었다는 얘기는 전회에 밝혔는데, 그 때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조축단의 「골·키퍼」였던 김화영은 당초 일본원정 14명의 테두리 안에는 끼지 못하는 선수였다.
그런데 원정비 때문에 「팀」이 해산되었다가 다시 구걸 비슷하게 해서 선수가 모자라게 떠난다고 하니까 김화영은 절호의 「찬스」라 하면서 자비라도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돈이 있을리 없었다. 그때 평소부터 그를 흠모하던 종로 우미관 골목의 그의 애인이 자봉틀을 팔아 돈을 꾸려왔다.
김화영은 그 돈으로 부랴사랴 쫓아왔으니 얘기는 한동안 미담으로 남아 있었다.
이때의 일본원정은 지금 생각해도 배고프고 쓸쓸한 것이었다.
「게임」도 두 차례 밖에 갖지 못했는데 1차전은 경응대에 5-2, 2차전은 농과대에 6-0으로 크게 이겼다.
당초 일본의 관서지방까지 원정하려 했던 계획이 깨진 것은 「스케줄」의 차질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체재비가 없은 탓도 있었으니 얼마나 곤궁했는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우리들이 돌아오던 2월13일의 경성역 「플랫폼」에는 수많은 체육인사와 각사 체육기자들이 나와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이들은 우리들이 시일이 임박해 떠났는데도 대승하고 돌아온 것이 장하다고 격려했고, 다음날 각 신문에도 일행의 도착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해주었다.
경성군과 평양군이 독자적으로 번갈아가며 열기로 했던 경·평전의 제2회 대회는 예정대로 34년4월 6, 7일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렸다.
그런데 6일의 1차전을 하루 앞두고 조선축구단에 소속된 우리의 몇몇 경성군은 인천으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조선축구단이 2월에 일본을 원정했을 때 돌아오는 길에 중국의 북경·천진을 들러올 계획이었다는 것은 이미 밝힌바있고, 그 계획은 경비가 없어 취소되었다는 것도 아울러 말한바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성에 도착해보니 사정이 달라져 있었다.
중국의 북경과 천진에서는 이미 우리가 언제 올 것이라는 기사가 각 신문에 보도되었고, 대회준비는 이미 끝나 우리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가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백명곤 감독은 다시 길거리에 나서서 몇 원씩을 모금했다.
그런 중에도 천진에 있는 영국계 석유회사의 간부인 임창복씨가 단장이 되어 당시 거금인 3백원을 내놓는 바람에 2월의 일본 원정 때와는 달리 경비나 모든 면에서 착실히 원정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 때의 조선축구단이 김원겸이 중심이 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원겸은 김용식과 함께 선발대로 배가 떠날 인천에 먼저 가 있었다.
조선축구단이면서도 경성군에 속해있었던 필자나 채금석·최성손 등의 경신 「그룹」은 난처했다.
하지만 김원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중국원정도 어려울뿐더러 그 당시의 상황이 김원겸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어서 우리는 6일의 경·평 1차전을 하루 앞둔 5일에 인천으로 떠나고 만 것이다.
중국에서의 경기일정이 넉넉히 남아있었는데도 김원겸이 경성군에 소속된 우리만을 인천으로 불러들인 것은 이형민이 하는 경·평전을 방해하려는 심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같은 조축단원이면서 평양군에 소속된 선수들은 경성에서의 경·평전을 치르고 인천에 내려가기로 했었으니까 말이다. 김용식을 제외한 우리 경신 「그룹」은 그날 밤을 인천에서 지냈으나 경·평전의 당일에 그만 경성으로 뺑소니치고 말았다.
지금 기억나기로는 『경·평전을 치르고도 충분히 중국으로 떠날 수 있는데 왜 인천에 있어야만 하는가』『두 선배가 싸우면 싸우지, 우리까지 합세할 필요가 있겠는가.』 『필경 우리가 경성에 갔다가 늦게 돌아와도 우리가 없으면 원정경기를 못할 것이니 마음놓고 경성에 갔다오자」 이렇게 얘기가 돼서 우리 셋은 몰래 빠져 경성으로 갔던 것 같다.
조선축구단의 북경·천진 원정이야기는 언젠가 하겠지만, 사실이지 우리가 빠지면 「게르 을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골·키퍼」만 하더라도 나 혼자뿐이었고, 채금석이나 최성손은 당대의 명「윙」이요, 「골·게터」였으니 그런 배짱도 부려 볼만했다고 기억난다. <계속> 제자 이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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