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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한양도성 살리려 120년 교회를 허문다? 역사는 세월 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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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3300년이 됐다는 사원 앞에 경외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 찾았던 이집트 남부 룩소르 사원 이야기다. 이웃한 카르나크 사원, 나일강 건너 네크로폴리스(왕가의 계곡을 포함한 거대 공동묘지)와 함께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곳에서 두 번 놀랐다. 하나는 문화재 유출이다. 원래 사원 입구 양쪽에 거대 오벨리스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19세기 프랑스로 넘어갔다. 1836년부터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서 있다. 사원 입구엔 짝 잃은 오벨리스크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동병상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통로 옆에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대 유적 위에 거대한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 가이드는 “이것도 문화유적”이라고 말했다. 알고 봤더니 이는 13~19세기에 걸쳐 세운 아부하가그 모스크였다. 바그다드 출신으로 이곳에서 살다 1243년 세상을 떠난 이슬람 성인 아부하가그를 기리는 곳이었다. 19세기 철거 움직임도 있었지만 죽은 사람들의 유적보다 산 사람들의 종교가 먼저라는 여론에 밀렸다고 한다.

 사원 뒤쪽에는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이집트를 빼앗았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짓게 했다는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로마인들이 그린 성화 같은 벽화도 보였다. 기원전 30년 이집트를 점령한 로마는 600년 이상 이곳을 통치하며 기독교도 전파했다. 이 모든 것이 룩소르 사원, 나아가 이집트의 고된 역사를 말해준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비잔틴의 대표 건축물인 하기야소피아도 비슷했다. 1453년 이 도시를 점령한 오스만 튀르크는 기독교 교회였던 이곳을 모스크로 바꿨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는 이곳을 몇 년 전 찾았더니 과거 기독교 성화를 덮기 위해 발랐던 회칠 제거 작업을 몇십 년째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사원 여기저기엔 여전히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으며 마호메트는 하나님의 사자’라는 거대한 이슬람 문구가 걸려 있었다. 점령·훼손을 포함한 모든 역사를 있는 그대로 간직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서울시가 한양도성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성벽 터를 가로질러 서 있는 120년 역사의 동대문 교회를 철거하겠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성벽 주변 경관을 되살리기 위해 철거해버릴 한낱 건축자재 덩어리는 아닐 것이다. 이미 등재된 조선왕릉에 속한 태릉선수촌도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역사는 오래된 순으로 소중한 것일까. 역사를 시설물·구조물에서만 찾아야 할까.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추억은, 아픔은 역사가 아닌 것일까.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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