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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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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나이가 많은 나무를 벨 때 한국 목수는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 궁궐 복원을 위해 크고 우람한 나무를 베려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먼저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낸다. 예를 갖췄으면 톱으로 베기 전에 도끼를 들고 "어명(御命)이오"라고 외친다. 도끼로 내려찍고 "어명이오"하고, 다시 내리찍고 "어명이오"한다. 이렇게 세 번 큰소리로 알리고 나서야 톱을 댄다. 궁궐목수로 평생을 지낸 신응수씨가 전하는 현장 기록이다.

큰 나무를 베기 전에 "임금의 명령이오"를 외치는 것은 나무를 사람처럼 대하던 옛 어른의 마음을 일깨운다. 궁궐을 되살리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고 나무께 아뢰는 것이다. 우리 조상은 그만큼 나무를 아꼈다. 수령이 오래 된 나무에는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믿었다. 나무를 베고 난 그루터기에는 앉지도 않았다. 그 기가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고 저어했다. 나무를 생명처럼 여기며 그를 죽이는 미안함을 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 궁궐은 이처럼 영혼이 깃든 나무로 지어졌다. 나무 중에서도 소나무를 으뜸으로 쳤다. 경복궁 복원 공사에만 261만5000여 재의 소나무가 쓰였다. 대부분 강원도 태백산맥 기슭의 양양군.명주군.삼척군에서 자란 소나무다. 그 가운데서 춘양목이라고 부르는 적송(赤松)은 나뭇결이 아이 피부 같고 강도가 철처럼 튼실해 목수의 사랑을 받았다. 얼마나 좋았으면 '억지 춘향'이란 말이 생겼을까. 구하기 어려운 적송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너도 나도 아무 소나무나 들이대며 춘양목이라 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훌륭한 소나무를 일본인은 '망국송(亡國松)'이라 부르며 마구 베어 갔다. 일제 강점기는 소나무의 수난시대였다. 일본인은 한국인의 혼이 담긴 소나무를 자르며 우리 민족 정신까지 잘라 버리려 했다.

얄궂게도 식목일에 큰 산불이 난 양양군은 소나무 서식지로 이름난 곳이다. 올 식목일은 청명과 한식이 겹쳐 소나무에게는 말 그대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가 돼버렸다. 가슴 아픈 일이다. 지혜로운 옛 어른이 한식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까지 만들었건만 못난 후손은 소나무를 지키지 못했다.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