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생활급 못된 채 묶여질 임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의 임금인상억제계획은 앞으로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 같다. 그 이유는 지난 3월말 현재 피고용자수가 2백10만명을 넘고 있고 지금까지 「인플레」과정에서 가장 큰 손해를 봐온 정액소득자들에게 또 한번 손해를 봐달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태완선 경제기획원 장관은 23일 공무원 봉급인상을 유보하는 것과 병행, 『모든 임금은 1년간 못 올린다』고 선언함으로써 민간기업의 임금까지도 규제할 뜻을 명백히 했다.
정부가 임금인상을 억제하려는 논지와 배경은 물가를 3% 수준에서 안정시키기 위해 임금상승을 1, 2년간 막는 것은 필요하고 또 물가가 안정되면 임금을 안올려도 실질소득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외국인투자유치 시책과 관련하여 외국투자가들이 우리 나라의 임금상승률이 높다는 점을 번번이 지적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고려되고 있다.
이미 지난 69년에는 임금상승 압박이 문제가 되어 생산성임금제 등이 검토됐다가 철회된 바도 있지만 과연 임금인상을 꼭 규제해야 하는가 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지난 2차 5개년 계획기간 중인 67년부터 71년까지 연평균 명목임금의 상승률은 21·2%나 되는 높은 율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임금의 상승은 67년 11·4%, 68년 12·1%, 69년 6·1%, 70년 9·4%, 71년 5·1%로 점점 낮아졌으며 5년간 연평균 실질임금 상승은 8·8%에 불과했다. 그리고 같은 기간 중의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15·9%가 향상되어 실질임금의 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비록 명목임금상승률이 높다고 해도 최소한 기업수지를 근본적으로 압박시킨 원인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4월 말 현재 광공업 상시종업원들의 임금수준(경제기획원 통계)은 광업이 연평균 2만2천9백11원, 제조업은 연평균 1만8천9백49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난 1·4분기(1월∼3월) 중 도시근로자 가계지수를 보면 2만원 이하의 현금소득자들은 7·9%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제조업 평균임금의 수준은 아직도 생계비에 미달되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난 66년부터 70년까지 노동쟁의건수는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으나 쟁의내용은 임금인상요구가 70% 내외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의 임금수준이 생활급에 못 미치는 데서 나타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봐서 봉급생활자들의 생활개선이 시급한 시기에 물가안정을 핑계로 임금을 억누른다는 것은 경제정책의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닉슨」대통령이 비상대권을 발동해서 임금을 동결했다고 하지만 미국의 임금수준은 생활급을 넘어서고 있으며 「인플레」에 노임이 미치는 압력도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또 물가 3%의 억제는 도매물가를 기준한 것이며 소비자물가를 기준한 것은 아니므로 지금까지의 물가상승 「패턴」으로 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앞설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임금을 현수준에서 억누른다는 것은 정액소득자들의 소득감퇴를 더욱 확대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이종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