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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능라도 뱃놀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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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동강물줄기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강 복판에 능라도 반월도 반각도 봉채도 등 작은 섬들이 저마다 운치 있는 특징을 드러내면서 조화를 이루고있다.
능라도는 이 가운데 가장 큰 섬이기도 하지만 섬 정면의 실을 늘어뜨린 것처럼 아름다운 수양버들, 털방석 같은 고운 잔디밭으로 해서 평양사람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섬이다.
가을이 되면 잔디 위 마른 갈대 숲을 헤치며 거니는 맛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파란 물에는 수양버들과 맞은편의 최승대·모단봉이 그림같이 비쳐 마치 꿈의 궁전 같은 느낌을 준다.
능라도에는 수원지가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는 없으나 배를 타거나 수영으로 건너가 강변에서 놀 수 있다.
수도 물을 끌기 위해 섬과 육지사이에 긴 수도관을 가설해 놓았는데 그리로 다닐 수는 없어도 다리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나는 학생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능라도 맞은편에서 옷을 벗어 허리띠로 꽁꽁 묶어 머리에 이고 수영으로 강을 건너 그곳에서 놀곤 했다. 그 무렵에는 헤엄을 쳐 능라도를 건너가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되어 있어 많은 어린이들이 늘 수영으로 능라도를 찾았다.
평양의 유흥 풍습 중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능라도와 반월도에서 뱃놀이하는 것이었다.
대동강변에는 기생학교가 있어 창을 가르치는 소리가 강변을 시끄럽게 했으며 강변에는 요릿집이 많아 뱃놀이하기에 십상이었다.
돈 많은 사람들은 배 위에 만찬을 차려놓고 기생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놀곤 했지만 돈 없는 사람들은 마상이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거나 「보트」를 타고 반월도로 건너가 모래찜질과 어죽 쑤어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때의 어죽 맛이란 천하일미다. 쌀과 닭, 큰 가마솥과 장작을 준비하여 배로 능라도에 다다르면 곧 음식장만이 시작된다.
먼저 닭을 잡고 쌀을 일어 붉은 닭죽을 쑨다.
이 죽에 평양고추장을 엷게 섞어 죽 그릇을 물에 띄워 식히면서 물 속에 들어가서 먹는 맛이란 기가 막히다. 죽을 먹기 전에는 삶고 남은 닭 뼈다귀를 놓고 둘러앉아 소주를 마시는데 이 또한 별미다.
능라도와 반월도 사이에는 샛물이 흐르고 있으나 거의 이어져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대개는 반월도에서 여름을 즐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모래사장에 운동기구를 준비해놓고 여름내 운동을 하는데 그렇게 해서 단련된 근육과 검게 탄 피부는 대단한 자랑이기도 했다.
평양에는 이처럼 좋은 대동강이 있기 때문에 평양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피서를 가지 않고 대부분 평양에서 여름한철을 즐긴다. 대동강은 또한 중요한 산업교통수단으로도 이용되는데 특히 사동탄을 실어 나르는 검은 배들의 특이한 모양과 뱃사공들의 구성진 노래 소리는 감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들의 『어기여차』소리를 채보하여 뱃노래를 작곡한 일도 있을 만큼 평양은 내게 예술과 낭만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한 평양이 지금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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