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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한글서간의 재평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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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조시대의 한글 편지는 어느 나라의 그러한 서간보다도 색다른 위치에 있다. 흔히 언간은 종래의 고식적인 학문방법에 의해서는 문헌 아닌 하찮은 묵적으로 경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 자료수집이 극난한 까닭에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도 그리 없었다. 다만 이병기 박사가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국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을 뿐 일반적으로는 불모지대에 방치되었었다.
필자는 근 20년 동안 3백50여 편의 친필 언간을 수집·정리를 계속해 왔다. 그들 언간의 공통점은 내용이 고유한 생활감정을 담고 있으며 자료적 엄밀성이 전시물이나 간행본보다 월등하게 과학적인 점이다. 그것은 연대와 필자가 확실하고 그것이 육필고본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확실한 언간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자료의 엄밀성을 지장과제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다. 갑오경장 이전에 쓰인 언간으로서 발·수신자가 확실한 친필원본에 한하여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 동안 수집한 것은 3백50여 편에 달하지만 그중 이조말기 것은 너무나 많기에 영조 조를 하한선으로 하여 2백50편에 역점을 두고 다루었다.
딴 문헌과는 달리 편지는 사생활에 관한 기록인 까닭에 비록 선조의 것일지라도 공개를 싫어하고, 특히 왕후장상의 것이면 가보로 비장하는게 통례이다. 그러므로 그 발굴은 노력과 금전만 가지고는 해결 안되며 때에 따라선 종가 집의 며느리와 결탁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나 언간 연구의 더 큰 난점은 방증자료가 너무도 협소하다는 점이다. 한문기록의 사서와 문집에 <언간>이 언급될 리가 없다. 그런데 왕조실록은 그들 유포와 매우 관련되는 부분이 많아 새삼 실록의 가치를 실감했다. 언간의 필자는 궁중왕족·사대부계급이 많이 남기고 있으며 서민·승려·무격도 약간 보인다.
내용별로 보면 문안·정찰·익명서·밀서·흉변서·정상·국제관계 등 다 방면에 걸치고 있다. 정치에도 당쟁에도 언간이 개입되었다. 1천8백93권 8백88책에 달하는 이 왕조실록에는 언간이 없는 중종 이전의 사정까지 규명하였으며 방대한 정사인 점에서 자료의 엄밀성은 어느 자료에도 비견이 안 된다.
언간의 연구는 서간문 그 자체의 검토만으로 그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훈민정음사·국문학·국어학·민속·사학·기타 한국학연구 전반에 유관한 것이다. 즉 그 효용의 범위는 극히 넓고 커서 다음 몇 가지 점으로 간추려 살필 만하다.
①훈민정음사적 검토
종래의 통설적인 <언문>관으로 볼때 명칭 그대로 천대받은 존재여서 국자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 지었었다.
그러나 언간을 통해서 한글실용의 실태를 고찰한 결과 위로는 군왕·집권자로부터 아래로는 상민남녀에 이르기까지 정치·교화·생활에 밀착돼있음을 알 수 있다. 이조 5백년의 저변에는 <언문>이 사사건건 밑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한글이 표면상으로는 천대를 불가피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민족생활에 공헌한 바 많았으므로 훈민정음의 창제정신이 상당히 구현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②국문학적 검토
문장과 문학의 원형인 서간의 연원과 변천이 해명됨으로써 국문학에 이바지한 언간의 역할이 의외로 큼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일기·수기·소설 등 이조시대의 산문문학을 고찰함에 있어서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언간의 발달이다. 그 산문문학의 산파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언간인 까닭이다. 언간에 표출된 작가의 성격이 그들의 문학작품연구에 관건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정송강·인목대비·송우암·윤선도 등의 서간 예에서 충분히 발견된다.
③국어학적 검토
언간에 쓰인 용어는 아주 일상적인 구두어이다.
그런 만큼 종래에 그 시대의 실제언어에 일치하지 않은 점을 인정하면서도 부득이 간행본류의 문헌에 의존하여 국어연구를 베풀어 왔다. 그러나 언간을 통해 연구한다면 그 결합을 지양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존 언간자료를 다수 얻어 볼 수 있는 16, 17, 18세기 국어사는 상당한 변모가 불가피할 정도로 새로운 면을 살필 수 있으며 당시 구두어 및 방언연구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리라 기대된다.
이 밖에도 한글서체의 변천에 관한 것이라든가 민속학적인 검토도 필요하다. 실생활의 상황이 그대로 반영된 언간에는 토착성이 강한 여인과 서민의 의식구조와 전통적 생활상이 많이 담겨있다.
특히 궁중 및 현관들의 언간이 양적으로 많이 유존하는데, 그 안에 나타난 역사적 사건은 일반사서의 차원을 넘어서 중요한 암시를 주고 있으므로 역사 및 제도연구에도 간과할 수 없는 문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김일근<국문학·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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