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 인술-병원마다 쫓겨난 임부 사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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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치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죽음 직전의 중태환자들이 병원문전에서 쫓겨 나는 일이 너무 잦다. 게다가 병원들은 주말과 휴일이 되면 걸핏하면 당직 의사가 없고, 병실이 없다는 핑계로 치료거부를 하기가 예사. 심지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도립병원 등에서 『당직 의사가 없다』 『입원비가 없으면 무료 입원할 수 없다』는 구실로 치료를 거절, 환자를 중태에 빠뜨리거나 목숨을 잃게 하는 일마저 있다.
▲서울 성동구 중곡동503 김영호씨의 부인 김순례씨(30)는 7일 상오9시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산기를 느껴 이웃 개인병원 두 군데에 찾아갔으나 하오8시쯤 입원보증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거절을 당했다.
김씨는 집주인 이종상씨(56)의 부축을 받아 하오8시40분쯤 세번째로 한양대학부속병원 응급실에 찾아갔으나 역시 2백원 짜리 진찰권을 살 돈도 없다고 내몰렸다.
이 동안 김씨는 탯줄이 밖으로 나오는 등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되어 밤9시50분쯤 동부시립병원 응급실로 찾아갔다.
동부병원 응급실 담당의사 윤모씨(45·욋과「레지던트」3년)는 김씨의 몸에서 태가 나와 있고 아기의 발 한 개가 빠져있으며 태아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진찰 했으나 『무료 입원할 수 있는 남부 시립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김씨는 밤10시10분쯤 다시 남부 시립병원을 찾아갔으나 『담당의사가 없으니 야간 환자를 받는 동부시립병원으로 가보라』고 차갑게 또 쫓았다.
함께 간 이씨가 정신을 잃은 김씨를 둘러 업고 용산 경찰서에 찾아가 호소, 경찰백차를 타고 다시 시립남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역시 담당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김씨는 8일 상오0시10분쯤 경찰백차에 의해 동부시립 병원 야간진료「센터」에 옮겨졌다.
병원은 그제 서야 수혈4병(2천cc)을 놓는 등 수술 전 처치를 하고 새벽4시10분쯤 제왕절개수술로 즉은 아기를 꺼냈다.
정규원 동부시립병원장은 『밤11시부터 이튿날 새벽8시까지 개설되는 야간진료「센터」에서는 무료치료가 가능하지만 김씨가 밤9시50분에 찾아왔기 때문에 무료로 진료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서울시의 조례나 지시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일요일인 지난 6일하오 7시쯤 4도의 중화상을 입은 정진환씨(32·서울 성동구 도선동180)의 장남 준석군(3)은 어머니 품에 안겨 서울시내 8개 병원을 헤맸으나 입원을 거절당해 밤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청량리 성「바오로」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8일 새벽2시30분 숨지고 말았다.
이날 정군은 끓인 국솥을 엎질러 중화상을 입자 어머니 장명숙씨(26)와 할머니 방영자씨(53)에 업혀 근처 D의원에 갔다.
D의원원장은 『화상이 심하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말해 「택시」로 「메디컬·센터」에 갔으나 응급실간호원이 입원실이 찼으니 『딴 곳으로 가보라』고 입원을 거절했다.
장씨는 경찰 병원으로 갔으나 이 병원은 『경찰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 거절, 다시 서울대부속병원으로 갔다. 서울대병원 역시 『입원실과 의사가 모자란다』고 거절, 밤9시께 우석병원으로 다시 찾아갔다.
여기서도 치료실이 수리중이라고 거절당해 장씨는 종로2가에 있는 개인병원 2곳에 들렀으나 모두 미루기만 하더라는 것.
고통에 못 이겨 보채는 정군을 업은 장씨는 병원을 찾을 때마다 응급치료만이라도 애원했지만 일요일이어서 의사가 없고 화상이 너무 심하다는 등 번번히 치료거부를 당했다는 것.
할 수 없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 집 근처인 하왕십리 성동외과를 거쳐 다시 이날 밤10시40분께야 응급처치를 받고 다시 성「바오로」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되었으나 너무 늦어 이튿날 숨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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