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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돌보고 마음 살피는 데 온천욕만 한 게 있으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충북 충주 수안보온천은 특히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수안보파크호텔 노천온천에서. 신동연 기자

10년쯤 전부터 우리 사회는 웰빙(Well-being) 열풍에 휩싸였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는 길이 우리네가 가꾸어야 할 삶의 꼴로 포장되어 온 일상을 지배했다. 그 ‘웰빙’ 자리에 지금은 ‘힐링’이 들어가 앉았다. 10년 새 우리네 삶이 그만큼 더 고약해진 것인지, 요즘에는 뭘 해도 힐링 타령이다. 책은 물론이고 음식·영화·음악·여행까지, 세상의 모든 문화상품은 하나같이 누군가를 격려하고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웰빙도, 힐링도 되는 온천

설악워터피아 노천탕 모습.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신동연 기자

힐링을 다시 생각한다. ‘치유’라는 뜻이 어렵다. 치료(cure)도 있고, 또다시 치료로 번역되는 세러피(therapy)도 있다. 단어 뒤에 ‘여행’을 붙여봤다. ‘큐어 투어’ ‘세러피 투어’. 그나마 힐링 투어가 제일 낫다. 왜 그럴까? 힐링에는 정신적 치료 또는 종교적 위무의 개념이 들어 있어서다. 한때 유행했던 디톡스(detox)라는 용어는 찌든 육신을 풀어준다는 개념인데, 힐링은 이 모든 걸 아우른다.

하여 힐링투어라고 하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조용해야 한다. 깊은 산에 박힌 절집 모양 한적한 장소가 선호된다. 그리고 자연과 가깝고 친해야 한다. 피톤치드(phytoncide) 같은 생물학 용어가 밥상머리 대화에 불쑥 끼어든 이유다. 몸에도 좋아야 한다. 지금은 걷기 여행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제주올레가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잡기 전인 2008년께만 해도 걷는 행위는 여행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근본이 되는 힐링의 방식은 따로 있다. 몸을 돌보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행동을 힐링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목욕만 한 게 없다. 굳이 세신(洗身)의 의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생각해 보시라. 우리가 저 자신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장소가 목욕탕 말고 또 있을까. 당신은 언제 왼쪽 귓불을 만져봤고, 언제 오른쪽 발바닥에 맺힌 굳은살을 들여다봤는가. 그래서 목욕은 힐링의 과정이 된다.

요즘 같은 추운 날씨면 뜨거운 물에 담그기만 해도 좋다. 이왕이면 물이 좋으면 더 좋다. 우리에게는 온천이 있다. 10년 전 온천은 가장 유효한 웰빙의 방법이었고, 힐링의 시대에 접어든 지금은 가장 효과적인 힐링의 방법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시대 사이에서 어떠한 변화가 읽힌다. 온천은 여전히 인기가 좋지만, 목욕은 그렇지 않다. 온천욕이 레저 활동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몸을 씻는다는 본래의 의미는 약해졌다. 즉 발가벗고 입장하는 온천장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우리에게 익숙한 온천의 모습은 목욕탕이다. 발가벗고 물에 들어가야 왠지 개운한 느낌이 든다. 아무리 물이 좋다고 해도, 수영모 쓰고 수영팬티 입어야 하는 요즘의 온천은 이래저래 불편하다. 무언가 걸리적거리는 기분이고, 자꾸 주위 눈치를 보게 된다. 어찌 된 영문인지 발가벗었을 때가 되레 편안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지난 10년 동안 전국의 수많은 목욕탕 온천이 워터파크로 변신을 감행했다. 레저업계는 온천장이 워터파크로 전향하지 않으면 도태할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 마당에 전국의 온천은 힐링 여행을 떠들어댄다. 수영복을 입는 순간 온천욕은 물놀이가 된다. 혼잡하고 번다하다. 고리타분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온천에 바라는 건 여유와 휴식이지, 시끌벅적한 물놀이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온천에서도 소외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온천법은 허술하다. 수질이나 성분 상관없이 수온이 섭씨 25도만 넘으면 온천으로 인정받는다. 다시 말해 온수가 나올 때까지 땅을 파면 온천을 개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여 전국에는 2012년 현재 온천지구가 143곳, 온천업장이 546개소나 된다. 온천지구는 동네 전체가 온천탕이라는 뜻으로, 대전 유성이나 경북 백암 등이 그런 지역이다. 온천업장은 허가를 받은 단 한 곳을 가리킨다. 경기도 포천 산정호수 근방에서는 한화리조트만 온천 허가를 받고 있다.

물놀이장과 행락지 사이
우리나라의 이름난 온천은 대개 천년 역사를 자랑한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숱한 전설과 신화가 얽힌 온천이 제법 된다.

대표적인 곳이 경북 울진의 백암온천이다. 예부터 해녀들이 잠수병에 걸리면 백암에서 며칠 묵었다가 다시 물질을 나갔다고 한다. 15세기 조선의 사대부들이 ‘한 표주박 물로도 온갖 병이 다 낫는다’며 칭송했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온다. 국내 온천은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개발됐는데, 일제가 부산 해운대를 개발하기 전인 1917년 백암은 온천장 영업을 개시했다.

백암온천은 아직도 목욕탕을 고수한다. 동해가 지척이고 백암산(1004m)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자연환경도 빼어난데 너무 내버려두는 게 아닌가 싶다. 녹슨 수도꼭지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물 하나는 최고로 친다. 어르신 효도관광 1번지로 여전히 각광받는다.

충북 충주의 수안보도 백암과 비슷한 처지다. 천년 역사를 자랑하고 숱한 신화를 머금고 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수안보에서 욕창을 고쳤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해온다. 경남 창녕의 부곡이나 대전 유성도 유서 깊은 온천 목욕탕이지만, 주변 환경을 고려하면 딱히 권하고 싶지 않다. 되바라진 물놀이장이 싫다고 해서 쇠락한 행락지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보양온천이라는 제도가 있다. 전국에 온천이 너무 많다 보니, 정부가 2008년 조건을 강화해 보양온천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수온이 35도 이상이거나, 유황 등 정해진 성분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서 25도 이상이어야 한다. 여기에 연면적 1000㎡ 이상의 수(水)치료 시설이 있어야 하고 주위 환경도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현재 설악 워터피아, 충남 예산의 덕산스파캐슬 등 전국에 5개 보양온천이 있는데, 대부분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충남 아산의 파라다이스 도고는 보양온천 중에서 목욕탕도 크고 시설도 잘 되어 있다.

온천을 고를 때는 수온이 제일 중요하다. 최고 수온 40도 이상이 좋다. 일반 목욕탕의 온탕 수준이다. 수온이 낮다는 건 보일러로 물을 데운다는 뜻이다. 물을 데운다는 건 물을 자주 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수온이 50도가 넘으면 일부러 물을 식히는 온천도 있다. 해서 예부터 온천수가 땅 위로 솟구치는 용출천을 으뜸이라 했다. 옛날에는 흔했다지만, 요즘은 경북 울진의 덕구온천만 용출천으로 본다.

온천 주위에 큰 산과 바다가 있으면 좋다. 큰 산이 있다는 건, 광물질이 풍부하다는 얘기고, 바다 근처라면 해수(海水) 성분이 높다는 얘기다. 해수에는 소독 작용을 하는 나트륨 성분이 풍부하다. 온천이 아니어도 인천 연안부두 쪽에 가면 해수탕 간판을 건 목욕탕이 늘어서 있다. 온천은 아니되 바닷물을 길어와 데워 쓰는 곳이다. 해수인데 온천 허가를 받은 업소도 있다. 경기도 화성시의 발안온천이다. 아토피 같은 만성 피부병 환자가 자주 찾는다.

온천의 효능은 체질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건 하루이틀 물에 담갔다고 해서 효과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 요양할 것을 권한다. 의학계에서 온천의 효능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곤 하는데, 대부분 서너 달 이상 지켜본 결과다. 참, 여기에서 소개한 온천은 이용료가 대부분 1만원 안팎이다. 4만∼5만원 하는 워터파크형 온천과 비교하면 가격도 힐링인 셈이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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