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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115분] "지청에 청탁전화 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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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가 열린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9층 회의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청와대와 검사들은 토론 시작 전 좌석 배치와 테이블 설치를 놓고 옥신각신하며 기싸움을 벌였다. 토론회가 진행되면서는 '盧대통령+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 대(對) 평검사 40명(질문 검사 수는 10명)'간의 일진일퇴가 계속됐다.

예정을 15분 넘긴 1백15분간 진행된 토론은 때론 금도(襟度)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분위기로 흘렀다. 盧대통령도 검사들도 언성이 높아졌고 서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 "막 하자는 것이냐"=盧대통령과 평검사들의 신경전은 盧대통령의 짤막한 인사말 이후 마이크를 잡은 서울지검 허상구(許相九) 검사가 "대통령께서는 토론의 달인이지만 우리는 아마추어다. 제압하려 들지 말고 우리 의견을 들어달라"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許검사의 발언을 볼펜으로 메모한 盧대통령은 "잔재주로 대화해 제압하는 인품의 사람으로 나를 비하하려는 뜻이 들어있다"며 "토론에서 지지 않은 것은 살아온 길의 밑천을 가지고 삶으로써 증명했기 때문이지, 말재주 때문이 아니다. 모욕감을 느끼지만 웃으며 넘어가자"고 맞받아 쳤다.

검사들이 "참여정부라는데… 검찰인사엔 검사들의 참여가 전혀 없다"고 지적하자 盧대통령은 "'참여정부라는데'라는 말속엔 비아냥거림이 들어있다"고 했다.

"대통령으로서 검사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는 盧대통령의 말에 대해 "과거 후보 시절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 한 일이 있다.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 아니냐"(수원지검 金暎鐘 검사)는 반박이 나오자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청탁전화가 아니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형 건평(健平)씨의 인사 청탁 논란을 지적하자 盧대통령은 "어수룩한 형님이 (기자들에게) 요령 없이, 바보처럼 대답했다가 해프닝이 있었다"면서 "굳이 얘기해 대통령 낯 깎을 일 있나. 정말 이런 식으로 하겠느냐. 일문일답하겠느냐. 대통령의 개인적 약점이나 신문에 난 것을 거론하는 자리가 아니다. (토론에) 아마추어면 아마추어답게 하라"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인사추천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이번 인사안을 외부인사들이 개입한 '밀실인사'라고 주장하자 盧대통령은 배석했던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과 박범계(朴範界) 민정 2비서관을 일으켜 세워 "외부인사라면 저 사람들인데, 저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이냐. 내가 검찰인사에 대해 민주당에서 전화를 한 통화라도 받았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거친 분위기는 막판 서울지검 이옥(李玉) 검사가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어 달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지 않으냐"라고 말하면서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盧대통령은 기념촬영을 하라는 의전팀 관계자들의 건의에 "실컷 싸움시켜 놓고 기념촬영하라고?"라고 조크하며 응했다.

◆ 불편한 康장관=康장관은 토론회 내내 편치 않은 얼굴이었다. 때론 다리를 꼬다가 때론 두 손을 꼭 쥐는 등 검사들의 항의성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자세가 달라졌다.

康장관의 발언이 길어지자 법무부 김윤상(金潤相) 검사가 나서 "검사들과의 대화시간인데 장관 해명이 너무 길다"며 막아섰다. 서울지검 박경춘(朴景春) 검사는 "검찰은 개혁하려고 온 나를 '점령군'이라 표현하며 감정적으로 거부했다"는 康장관의 말에 "점령군이란 표현은 듣기에 거북하다. 무슨 신탁통치 얘기냐. 전 국민이 보는 토론회이니 용어 선택에 주의해 달라"고 항의했다.

康장관은 "난 민변의 부회장 자격으로 대통령 보좌하는 것 아니다"라거나 "인사권은 검찰의 수사권 견제를 위해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행사해야 한다"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았다.

토론이 격해지자 盧대통령은 "장관과 부하 공무원이 지엽적인 문제로 논쟁을 하면 자리가 흉해진다. 그건 따로 얘기하라"며 제동을 걸었다.

◆ "강의 들으러 온 것 아니다"=토론회 시작 전 盧대통령 좌석에만 테이블이 마련돼 있자 선발대로 파견된 서울지검 송인택(宋寅澤)검사는 "우리가 강의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지 않으냐. 상대방에 대한 무시 아니냐. 메모도 하고 자료도 놓아야 한다"고 항의했다. 이 논란으로 검사들의 토론장 도착이 늦어지기도 했다. 진통 끝에 의전팀은 사각 테이블 4개를 질문 검사석 앞에 설치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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