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고 맞은 공화 주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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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일권 신임 당의장 서리 백남억 전 의장 자택방문>
공화당의 신·구 당의장이 27일 아침 평창동 백남억 전 당의장 댁에서 만났다.
정일권 신임 당의장 서리는 당사에서 있은 이·취임식에 앞서 백 전당의장을 인사 방문하고 앞으로도 계속 나의 고문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넓은 응접실의 소파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과히 어색하지 않게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정부에 있을 때도 한일회담, 월남파병 등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협력을 해주셨읍니다. 이번 당의장이 된 것은 훈련만 받던 훈련병이 총을 들고 앞에 선 느낌입니다』-.
『천만의 말씀을….』
정 의장은 일선에 출전한 신병을 자임했고, 고병 백남억씨는 후임 의장에게 은하수 담배를 권했다.
두 사람은 모두 미소로 일관했다. 정 의장은 『혼자만 편할 수 있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찾아와 괴롭힐 테니 좋은 충고를 해주셔야 합니다』고 했다. 58세의 백씨와 55세의 장군. 얼마 전부터 1주에 한번씩 「골프」를 함께 치던 두 사람은 앞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 점심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미국하원의 친한파 「해너」의원으로부터 정 의장에 걸려온 축하전화였다.
신·당의장은 동석했던 길 전직사무총장과 함께 정 의장 차를 함께 타고 이·취임식장으로 향했다

<정 새 당의장 서리>
정 의원이 새 당의장 임명을 통고 받은 것은 26일 낮 청와대에서 박정희 총재 및 김종필 부총재와 자리를 함께 한데서였다.
이 자리에서 박총재는 『신문에 미리 얘기가 나가면 내정인사가 뒤집히는 게 과거의 관례였는데…』라고 농담을 꺼내면서 「뒤집히지 않은 인사」를 알렸다는 것.
뒤이어 길 사무총장, 김정렴 비서실장이 자리를 함께 한 칼국수의 점심식탁에서 박 총재는 『다른 당직자의 경질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고 정 당의장도 『형식상으로 사표를 받았다 되돌려주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청와대에서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온 정 당의장은 찾아오는 손님과 축하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축하화분은 김종필 총리에게서 제일 먼저 왔다. 몰려든 보도진의 간청 끝에 방문을 연 정 의장은 당내문제에 말을 피할 수 없었다. 『신문지상에 4인 체제니 하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6, 7대 국회시절에 행정부에 있으면서도 그분들과 가장 가까운 사이었지요』라면서 그런 파벌용어조차 불합리하다고 했다.
『1백14명(소속의원)의 총화를 이룩하는 총화체제를 이끌어 나가겠읍니다』고 했다.
전임자인 백 전 당의장에 대해서는 『그분자제의 병역관계에 별다른 잘못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도의적으로 사퇴한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고 했다. 원내생활 1년 생임을 강조해 『나는 알다시피 정치 1년 생이므로 모든 것을 공부해가며 일해가겠다』고 되풀이했다.
당무를 구상하고 싶었던지 정 의장은 축하객과 축하전화를 피해 저녁땐 부인 윤계원 여사와 함께 「워커힐」에서 조용히 식사를 했다.

<당사주변의 표정>
신·구 당의장 이·취임식이 열린 27일의 소공동 당사에는 당총재를 지낸 정구영 옹·김종필 부총재·백두진 국회의장도 모처럼 모습을 보였다.
식이 있기 전, 당의장실에는 정옹·백 국회의장·김 총리·장 국회부의장·구 정책위의장·길 사무총장·현 원내총무 등이 모여 떠나는 사람과 오는 사람을 「총화」로 송영.
정옹과·김 부총재는 마주 놓인 의자에 자리잡고 백 전당의장과 정 신당의장은 서로상좌를 양보하느라고 두 손을 잡고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김 총리는 정옹에게 『정말 오래간만에 뵙겠읍니다』라고 정중히 머리를 숙여 악수를 나누었고 정옹을 『요즘 국회에서 답변을 하시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시더군요』라고 인사말을 했다.
김종필 부총재는 취임식 축사에서 『앞으로 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나갈 정 의장에게 마음으로부터의 부탁을 드리고 모든 당원들이 새 당의장을 중심으로 뭉쳐 나가기를 당부한다』고 했다.

<백남억 전 당의장>
당의장 사표가 수리된 후 줄곧 평창동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던 백남억씨는 후임이 임명된 26일 「뉴코리아·골프」장의 「필드」를 돌았다.
그 동안 집에 있으면서 책을 뒤적이고 김용태·이동령씨 등과 더러 낚시질을 나갔었다. 가까이 지내던 의원들이 찾아가면 『조용하게 낚시질이 나다녀야겠다』고 했고 『정치에서 손을 떼면 대학강사나 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정계를 떠나게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다.
그의 진퇴문제가 한창 거론되던 지난 15일 그는 당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제발 나의 문제해명에 신경을 쓰지 말아달라』면서 『여러분이 내 문제에 대해 한 줄을 쓰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다. 『내가 이제 와서 무엇이라고 할 말이 있겠느냐』는 것이 퇴진의 변이다. 『반백이 넘은 사람이 그 동안 해놓은 일도 없는데 엎친대 덮친 격으로 가족문제로 당의 명예까지 손상시킨 결과가 되니 당총재인 박대통령에게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당 의장직 사표를 쓰고 난 뒤 그는 부인 박갑규 여사와 며칠간 밤잠을 못 자면서 국회의원직을 그만두는 문제 등 여러 가지 생각을 되풀이하기도 했으나 일단 사표가 제출되고 수리가 된 다음부터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체중도 늘어났다는 게 주위사람의 얘기다. <심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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