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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내국인만 미화원 자격 부여 … 이주민 ‘노예 노동’ 논란 없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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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만에 위치한 항구도시 크론슈타트시는 2012년 후반부터 독특한 사회·경제 실험을 시작했다. 외국인 이민자 출신 환경미화원을 러시아 내국인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시가 위치한 코틀린 섬은 행정구역상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 특별시에 속해 있다. 그러나 실제론 상트페테르부르크와는 다른 역사를 걸어왔고, 삶의 양식도 차이를 보여 거주민들도 선원, 전·현직 장교, 수대에 걸쳐 바다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통 사람’들은 아니다. 1996년까지 관광객을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개방되지 않은 도시였다. 범죄발생률도 0%였다.

그런데 2000년도 중반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크론슈타트시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소련 출신 장사꾼들이 2008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당시 금융위기로 인해 건설시장이 위축됐고 건설노동자로 있던 외국인 이민자들은 잉여 노동력이 되면서 공공부문으로 모여들었다. 거기만 그런 게 아니라 러시아 전역이 그랬다. 대부분이 중앙아시아 출신인 이주노동자들인 이들은 공공부문에서 환경미화원이 됐다.

당시 크론슈타트시에서 환경미화를 맡은 회사는 ‘질콤서비스’였다. 회사는 일을 ‘본다’사에 하청을 줬다. 본다는 넘쳐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했는데 주거 문제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알아서 살아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소위 ‘고무 아파트(입주민의 대다수가 외국인인 아파트인데 아무리 많이 들어가도 늘어난다는 의미)’라 불리는 곳이 생겨났다. 개중엔 빈 건물이나 심지어 국방부 시설을 무단 점유하는 사태도 있었다. 거기에 가족도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법 노동자들은 맡은 구역을 청소하며 찾아낸 고철이나 삽 등을 고물상에 팔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떠나버렸다. 시민들은 불편해했다. 테렌티 메세랴코프 크론슈타트 시장도 “우리 시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하실에서 30명씩 모여 살고 있고, 이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또 ‘시에서 번 돈을 쓰지 않고 가져나간다’는 말도 했다.

시는 해군과 함께 유례없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밤마다 군 순찰대가 도심을 돌기 시작했다. 외국인 억류 권한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단속이 강화되면서 ‘노예 노동력’을 사고팔던 기업들이 어려워지고 갈등이 시민사회로 번졌다.

시 주최 포럼에 온 참가자들은 ‘크론슈타트, 먼지로 뒤덮여’ ‘우즈베키스탄인 환경미화원을 돌려달라’는 문자를 날렸다. 인터넷으로 다툼이 이어졌고 검찰이 끼어들고 언론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시가 펼치던 ‘정책 실험’이 알려지면서 러시아 국적자만 환경미화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시장에 따르면 프스코프주에서 온 한 여성은 환경미화원에게 집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텔레비전을 통해 알게 돼 일하러 왔다. 시는 그 밖에도 ‘고무 아파트’ 수를 늘렸고, 집주인에게 실거주자 수에 따라 월 6만~8만 루블의 공공요금을 매겼으며, 관련 문서를 작성해 이웃들의 서명을 받았다. 시민들은 크론슈타트 인터넷 지도를 통해 자신 지역의 환경미화원의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도시 미화를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미트리 스테신 기자(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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