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Russia 포커스] 유리천장에 부딪혀 정계 은퇴한 이리나 하카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2004년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던 이리나 하카마다는 ‘성 차별’등에 지쳐 정계를 은퇴했다. 모스크바 집에서 포즈를 취했다. [리아 노보스티]

정치적 동기로 소련으로 건너 온 일본 공산당원 하카마다 무추오와 교사였던 니나 시넬니코바의 딸 이리나 하카마다(사진)는 1955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녀는 수줍음을 많이 타고 말수가 적은 소녀였다. 그녀는 대학 시절 경제 공부에 몰두했고 28세에 정치경제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산당에 입당해 몇 년간 연구와 강의에 종사했다.

89년 하카마다는 강의를 그만두고 공산당에서도 탈당한다. 이때부터 그녀는 빠른 속도로 사업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경영자로 일하는 동시에 자선활동도 벌였다. 92년엔 정치계에 입문했다. 그녀는 국가두마(러시아 하원) 의원으로 여러 번 선출됐고 의회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념을 밀어붙였다.

95년에는 ‘공동의 대의’라는 정치단체를 이끌었고 미국 타임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20세기의 정치인’ 후보에 선정됐다. 그녀는 보리스 넴초프, 세르게이 키리옌코와 함께 ‘우파연합’당을 창당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강력하게 반대한 그녀는 200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약 400만 유권자의 표를 얻었다.

득표 4위지만 푸틴의 고정지지층이 71%인 데다 여성 대통령이 집권하길 원하는 러시아인이 얼마나 되는지를 고려하면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2008년 공식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사실 더 이상 정권을 향해 나아갈 여건이 안 됐기 때문에 은퇴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객관적인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내 성별과 출신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이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장’에 부딪힌 것이다. 하카마다는 러시아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아무도, 특히 러시아 국민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리나 하카마다는 말한다.

현재 이리나 하카마다는 창작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전직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사랑, 아웃: 어느 정치적 자살 이야기』, 『큰 정치판에서의 SEX, ‘self-made woman’ 자습서』, 『대도시에서 성공하기』의 저자로 작가의 입지를 잡아가고 있다. 또 여성사업가 마스터클래스에서 강연하고 러시아 유수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디자이너 레나 마카쇼바와 함께 ‘하카마’라는 브랜드로 의상컬렉션도 선보이고 있다. 기혼이며(네 번 결혼) 두 자녀를 뒀다. 1999년과 2002년에 러시아 내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됐다. 2005년에는 1000명의 여성 후보들 중 한 명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하카마다는 말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여성 홀로 남성들 사이에 있으면 남성들과 청중들이 자신의 말에 주목하게 만들기가 정말 어렵다. 정치에 몸담는 여성은 남성과 경쟁하기 위한 특별한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녀에게는 더 많은 비판이 들어올 것이고, 그녀의 성공에 사람들이 더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또 말한다. “사회가 여성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정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여성은 여성에 대한, 남성은 여성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독일과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상황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는 10년 정도 후의 일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이 정치에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현재는 아무도 여성정치인에게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

리자 레비츠카야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