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 <제26화>내가 아는 이박사 경무대 사계 여록(132)|곽상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박사가 외교장관으로 내정했다가 대통령의 특사로 바꾼데는 무슨 좋지 않은 곡절이 있을 게야.』 한민당 간부들은 유석에게 이런 말로 특사수락을 거부하도록 전했지만, 유석은 이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특사를 받아들였다. 유석의 말은 경무부장 3년 동안의 피로와 정치적 모함에서 해방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다음날 유석으로부터 받아들인다는 말을 들은 이박사는 기쁨을 얼굴에 가득 담고 유석의 손을 잡아 흔들면서 『이렇게 조박사가 대통령 특사의 임무를 수락해주니 반갑기 이를 데 없어. 정말 잘 생각했어. 그리고 또 한가지 부탁할 것은 각국 예방을 마치고 나서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도 참석해 달라는 것이요. 즉 우리측 유엔한국대표단의 최고정치고문으로 활동해 달라는 말이요』라고 했다고 한다.
이박사는 누구든 그가 맡기는 일을 기꺼이 맡아줄 때 이처럼 좋아했고 대견해 했다.
이렇게 해서 이대통령의 특사를 맡은 유석은 김우평·정일형씨를 수행원으로 하여 48년 9월 동남아·구주·미주 등 세계각국의 순방길에 올랐다.
그해도 저물어 갈 무렵 유석 일행은 유엔총회에서의 한국정부승인을 얻어내 마지막 임무를 끝내고 미국에 돌아왔다.
이박사는 특사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조박사에게 뉴욕으로 전문을 보냈다.
이 전문은 ①유석은 48년말까지 뉴욕에서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할 것. ②외교관으로 당분간 활동하는 것이 좋겠으니 희망하는 임지를 선택해서 통보하라는 것이었다.
유석은 뉴욕에서 즉시 이박사에게 서한을 보냈다. 그 내용은 『이만하면 대한민국의 외교는 개척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금후의 한국외교는 내정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나는 앞으로 평민으로, 혹은 공직을 맡아보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내정의 혁신발전에 헌신할 작정입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박사는 이런 유석의 글을 받고 이를 수락, 귀국해도 좋다는 지시를 했다.
48년 말 유석은 귀국해서 경무대로 이박사를 찾아갔다.
이박사는 4개월 동안 세계를 돌며 거둔 외교적 성과를 크게 치하했다. 그런데 유석은 이 자리에서 놀라운 부담거리를 보고했다.
이박사가 준 여비와 외교활동비가 유엔총회가 열리는 파리에 올 무렵 모두 떨어져 미국은행으로부터 3만불을 빌어 썼다는 것이었다. 즉 이대통령의 특사로서 한국정부의 지불보증을 담보로 외교활동비 3만불을 꾸어 썼으니 대통령께서 갚아주어야 하겠다는 얘기였다. 마담, 프라체스카와 함께 유석의 말을 듣고있던 이박사는 유석의 이런 보고에 깜짝 놀랐다.
건국 초부터 말기까지 널리 알려진 얘기의 하나가, 이박사는 달러를 무섭게 아낀다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해외에서 망명생활중의 외교활동을 했던 이박사의 경비 규모에 비긴다면 그가 준 여비 이외의 3만불이란 너무 큰돈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조박사로선 나라없던 때의 외교가 아니라 당당한 주권국가, 거기에다 건국초의 외교활동이 어찌 나라없던 때의 궁색함을 되풀이 할 수 있겠느냐는 배짱이었다고 한다.
이박사는 한동안 말을 잃은 것처럼 가만히 있는 것으로 놀라움을 표시했지만 책하지는 않았다고 하며, 그 뒤 오랜 기간이 지나 한국정부가 이 돈을 갚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이 후일 이상한 소문으로 변질이 되어 세간에 유포됐다. 소문인 즉 프란체스카 여사가 대통령 특사로 나가는 유석에게 해외의 어떤 사람에게 전달하라면서 3만불을 주었는데 유석이 이를 전하지 않고 외교활동비 명목으로 모두 써 버렸다는 것이다.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자꾸 각색이 돼 어떤 이들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외국은행에 예금해 달라는 돈을 유석이 나랏돈이니 나라를 위해 쓴다고, 외교활동비로 썼다해서 유석을 배짱 좋은 사람, 프란체스카 여사는 노후를 위한 재산도피나 한 사람으로 몰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프란체스카 여사가 망명생활 때 빚진 것을 갚느라고 돈의 전달을 부탁했는데 유석이 외국에 나가 술과 여자에게 이 돈을 탕진해 버렸다고 유석을 철면피한 탕아로 몰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돈을 두고 프란체스카 여사를 결부시킨 소문이 나돌게된 데는 그 까닭이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도 이박사만큼 검소한 생활이 몸에 뱄고 이박사를 섭섭하게 하는 이를 싫어했다. 유석의 3만달러 빚진 얘기를 듣고 이박사가 놀라는 것을 보고 프란체스카 여사는 유석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래서 유석이 나간 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박사에게 『유석이란 사람, 큰일 낼 사람이다. 자칫하면 큰일 저지를 사람이니 경계해야겠다』고 했고, 이런 말을 경무대에 드나들던 그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했다고 한다.
즉 유석이 3만불을 써버린데 대해 프란체스카 여사가 두고두고 못 마땅해 했고, 이 말이 밖에 전해지자 바로 3만불이 프란체스카 여사의 돈이었다고 변질하게 된 것이 아니가 한다.
이박사는 이 일로 놀라긴 했지만, 유석을 불신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유석이 돌아온 지 두 달이 못되는 49년 1월 중순께 국회부의장으로 있던 김동원씨를 통해 유석에게 문교장관을 맡으라고 권유해 왔다. 이 권유는, 유석이 『나는 문교장관으로 부적격이다』고 거절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