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신문고] 10층 난간 화분, 강풍에 휙~ 날벼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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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베란다에 걸린 화분 걸이대. 추락 위험이 높지만 규제는 없다. [최승식 기자]

경기도 일산에 사는 이혜림(28)씨는 최근 남자친구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걷다 위험한 일을 겪었다. 난데없이 머리 위에서 화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폭이 15㎝정도 되는 도자기 화분은 이씨에게서 불과 3m 정도 떨어진 곳에 추락한 뒤 굉음을 내며 깨졌다. 위를 쳐다보니 아파트 10층 베란다 바깥쪽의 ‘화분 걸이대’가 보였다. 거기에 있던 화분이 갑자기 몰아친 강풍에 추락한 것이었다. 이씨는 관리사무소에 항의했다. 사무소 측은 “화분 걸이대 설치 금지 규정이 없어 규제를 못하고 있다 ”는 대답만 했다.

 외부 설치형 화분 걸이대가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일부 젊은 주부들 사이에서 다육식물 재배가 인기를 끌면서 베란다 난간 외부에 설치하는 화분 걸이대도 덩달아 인기가 높아졌다. 밖에 내놔도 추위 등 기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물을 많이 안 줘도 되는 일부 다육식물은 베란다 외부에 내놓고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지가 지난 25~26일 서울 잠실·마포·성북 등의 아파트 밀집 지역을 둘러봤더니 베란다 외부에 화분 걸이대가 설치된 곳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예 외부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위에 화분을 올려놓은 집도 있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걸이대는 철망·스테인리스·플라스틱 등 재질이 다양했다. 플라스틱 걸이대는 한눈에 봐도 화분의 무게 때문에 부서질 위험이 커 보였다. 스테인리스 등 다른 재료를 사용한 제품도 추락 방지용 받침대가 없거나 있더라도 높이가 낮 았다.

 하지만 화분 걸이대 설치를 규제하는 규정이나 제품 안전 기준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주택법시행령 57조에 ‘공동주택의 발코니 난간 또는 외벽에 돌출물을 설치할 경우 관리주체의 허락을 받도록 한다’고만 규정돼 있다. 사실상 개별 아파트의 내부 관리규정에 맡겨놓은 셈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선 강제로 화분 걸이대 설치를 규제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화분 걸이대 설치를 놓고 주민들 간 갈등도 적잖이 발생한다. 서초구에 사는 박정수(53)씨는 “단지 내에 아이들이 다칠까봐 걸이대를 철거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아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냈다”고 말했다. 성북구 A아파트는 화분 걸이대를 놓고 주민들 간에 마찰이 빚어지자 아예 아파트 출입구에 걸이대 설치를 금지한다는 안내문을 붙여놓기도 했다. 서울대 한무영(건설환경공학) 교수는 “화분 걸이대 등 야외 구조물을 임의로 설치할 경우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베란다 내부에서만 화분을 키울 수 있게 하는 등 일괄적인 규제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글=손국희·장혁진 기자 <9key@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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