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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스포츠 해설 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타자 쳤습니다. 3루 쪽「스탠든 쪽으로 날아가는「파울·볼」입니다. 「더드·베이스·맨」이 달려갑니다만 잡기 힘들 것 같습니다. 결국 못 잡았습니다….』
이것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야구중계방송의 한 토막이다. 그런데 이 중계방송을 하는「아나운서」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라면 믿기 어려운 얘기다. 야구경기를 실제로 본 적은 한번도 없고 신문에 난 자기이름도 못 보는 사람이「스포츠」의 해설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미국「롱비치」의 한 일간지에서 서부지역「소프트·볼」연맹의 경기해설을 담당하는「처크·메디크」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1급「스포츠」해설 가. 유아시절부터 장님인 당년 49세의「메디크」씨는 또한「소프트·볼」 연맹의 선전책임자이며 동시에 공보「아나운서」이다. 뿐만 아니라 탁구협회의 공식임원이기도 해 만능해설가로서 손색이 없다.
신체기능의 일부가 장해를 받는 사람은 다른 기능에서 범인보다 탁월할 수 있다는 실례를 입증하듯「메디크」씨의 주무기는 역시 그의 특출한 청각이다. 『「볼」이 탁구대 위에 튕 겨 소리를 내는 한, 장님이라고 해서 경기해설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고 그는 설명한다.
최근의 야구경기를 중계한 자의 해설을 옮겨보면 그의 실력을 알 수 있다. 유격수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내야「플라이」를 날렸을 경우-『유격수가 잡을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큰 소리로) 잡았습니다….』또「번트」의 명수로 알려진 타자가「파울·볼」을 냈을 때-『쳤습니다만「파울」,「캐처」가 재빨리 잡았습니다. 그는 여간해서「번트」를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엔….』투수의「체인지·오브·페이스」에 말려 타자가「스트럭·아웃」을 당했을 때-.
『「나이스·피칭」이었습니다. 변화 있는「커브·볼」에 타자는 속고 말았습니다…』아무든 사실과 조금도 안 틀리는 실감나는 해설이다.
심지어 그는 투수의 구질이라든가 투수교체시기 둥에 이르기까지「베테랑」이상으로 잘 안다. 어떤 투수는 변화구를 던질 때는 약간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고, 어떤 투수는「인슈트·커브」를 던질 때 발로 묘한 흙 소리를 내는 습관이 있는 것 둥 훤할 뿐 아니라「덕아웃」에서 감독이 나오는 소리까지 모두 포착하기 때문이다.
전에 방송국의「스포츠」 해설가로 있었던 때는 모든 기록을 소상하게 점자책에 기록해 두어 어떤 질문에도 척척박사였다.
대부분의 기자나 관중들조차 그가 장님이란 사실을 모른다. 「캘리포니아」대학「팀」의 「코치」「웨인·웰크」씨 조차『나도 수년간을 모르고 지냈다. 누가 그가 장님이라고 말해 줄 때도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고 술회할 정도다.
신장 6「피트」에 체중 2백50「파운드」인「메디크」씨는 성격도 명랑하고 우애가 깊어 동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데 내일『지금의 직장에서 쫓겨난다 해도 모레면 병원의 암실기사로 근무할 수 있지만, 다른 신문사에 일자리를 찾거나 방송해설가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직업에 애착이 대단한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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