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란 핵협상 주역은 영국 무명 외교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만약 이번 타결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애슈턴협정’이 될 것이다”(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10년 만에 타결된 이란 핵협상을 두고 서구 외교가와 언론이 영국 출신의 한 여성 외교관에게 공을 돌리고 있다. 미국 등 6개 강대국(P5+1)과 이란의 물밑 협상을 주도한 캐서린 애슈턴(57·사진)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다. “투철하고 집요한 중재자”(존 케리 미 국무장관) “이번 협상의 최대 승자”(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라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사실 이번 협상 타결 전까지 애슈턴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2009년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로 임명되기 전까지 외교 경험도 전무했다. 2007년 고든 브라운 총리 휘하에서 노동당 상원 원내대표를 맡은 게 최고위직이었다. 이때도 국내 정치에 주력했다. 그 때문에 그가 EU의 부의장 격인 외교안보 고위대표에 임명되자 “EU의 수치”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원래 영국은 전임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를 EU 상임이사회 의장에 보내려 했다. 하지만 EU가 너무 튀는 스타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영국은 의장직을 벨기에(헤르만 반롬푀위)에 양보하고 무색무취한 애슈턴을 외교안보 고위대표에 꽂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렇게 데뷔한 자리이니 순조로울 리 없었다. 미국·중국 등 강대국 외교장관들을 상대하며 EU의 목소리를 통일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이란 핵협상을 위한 P5+1 회의를 주재했지만 4년간 지지부진한 줄다리기만 계속됐다. 급기야 프랑스 외교가에서 애슈턴을 “있으나마나”라고 혹평했다는 르몽드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애슈턴은 “내가 하는 일로 나를 판단하라”는 입장이었다. 이번 제네바협상 때도 매일 12~18시간씩 이란과 P5+1 사이를 오가며 우라늄 농축 중단 같은 까다로운 문제를 중재했다. 합의안 역시 애슈턴과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 둘 사이의 담판으로 확정됐다. 텔레그래프는 “애슈턴이 브뤼셀 의 만연한 성차별주의를 넘어 오만한 외교관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고 썼다. ‘무명(zero)에서 영웅(hero)으로’가 기사 제목이다. 1956년 영국 업홀랜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애슈턴은 77년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베드퍼드 칼리지)에 입학했다. 정책 컨설팅 등의 일을 하다가 99년 노동당 당대 귀족(life peer)으로 임명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교육기술부 차관, 법무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강혜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