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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긴 메이크업, 암 환우 마음 밝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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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자, 눈을 감아주세요~” 김미연 강사의 손길에 환우의 눈에 봄이 찾아왔다. 메이크업 모델로 나선 한기남 환우의 모습. 카운슬러의 손에 얼굴을 맡긴 환우들의 표정이 즐겁다. 지난 21일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대강당에 모인 유방암 환우회 회원들과 아모레 카운슬러(왼쪽부터 시계 방향).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스치자 그의 눈꺼풀엔 옅은 분홍빛이 물들었다.

 “예쁘긴 뭘 예뻐~ 호호” 지난해에 이어 아모레퍼시픽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에 두 번째 참여한다는 한기남(56)씨는 유독 고운 피부와 반듯한 이목구비로 이날의 메인 모델이 됐다. 환우라고 부르기에도 어색할 만큼 밝은 얼굴을 지닌 그녀는 지난 2009년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엑스레이 진단 직후 수술에 들어갔고 현재는 80% 정도 완치된 상태다.

 당시 심정을 물으니 “이건 오진이다. 암이 아니다. 그냥 교수님이 해결하는 일이니 맡기고 따라가자”였단다. 쉽지 않았지만 다른 생각은 지우고 의사만 믿고 간 결과 현재는 3개월마다 검진을 받고 약만 처방받으면 되는 정도가 됐다.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유방암 환우회 ‘유미회’ 회원인 그녀는 암을 이겨내는 원동력 중 하나로 산을 꼽았다. 유미회는 삼삼오오 모여앉은 아름다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유미회 회원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전국의 산에 오른다는 그녀는 산에 다니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계룡산, 대청봉 등 전국에 안 가본 산이 없다는 그녀, “이렇게 예쁘게 화장하고 산에 가도 되겠느냐”며 웃었다.

 지난 21일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대강당에서 아모레퍼시픽 ‘2013 하반기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행사가 진행됐다. 유방암 환우 50명과 카운슬러 18명이 모였다. 이날 행사는 유방암 수술 후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를 통해 새 삶을 찾은 환우의 영상으로 시작됐다. 충격으로 다가온 유방암 진단과 함께 짧게 깎은 머리는 절망을 가져왔지만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를 만나게 된 후 더욱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는 사연이었다.

 “오빠가 왔습니다. 오빠가 왔어!” 다음으로 이어진 프로그램은 최경국 강사의 웃음치료 강의. 최 강사는 시종일관 과장된 몸짓과 커다란 목소리, 호탕한 미소로 환우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의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뇌 스트레칭’이었다.

 “우리 어머니들, 남편이 속 썩일 때 보통 검지로 가리키면서 ‘어휴 저 인간!’하시죠? 자, 이제는 그럴 때마다 박수를 치시는 겁니다. 아들이 상 받아왔을 때 ‘와~ 우리 아들~’하는 것처럼 ‘네가 그렇게 잘났냐’고 남편 욕을 하면서 박수를 막 치는 겁니다.”

 최 강사는 남을 손가락질 하던 검지는 내리고, 잊었던 엄지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스스로에게 “나도 최고야”라며 엄지를 치켜들고 마음이 힘들 때 박수를 치면 그것이 자존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뇌 스트레칭이라고 했다.

 “배웅은 필요 없다. 멀리 나오지 말라”며 문을 나서는 뒷모습에도 웃음을 흘린 최 강사가 떠난 후 최미현 교육 강사의 피부 관리 강좌가 이어졌다.

 다음은 환우들이 가장 기다리던 김미연 강사의 메이크업 시간.

  엷은 웃음을 머금고 환우의 얼굴을 만지던 정현정 카운슬러는 자궁경부암을 앓은 시어머니와 피부암을 겪은 친정어머니를 보며 암에 대해 이해하게 됐고 환우들을 곁에서 돕고 싶어 봉사를 하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서먹하지만 서로 피부를 맞대고 화장을 해주다 보면 자연스레 속마음도 털어놓게 되고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전달받게 된다는 카운슬러는 “여자라면 누구나 유방이 있고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다. 나도 아모레퍼시픽 행사를 통해 만난 환우들의 조언으로 작년 처음 정기검진을 받아봤다. 에너지를 주고 싶어 왔는데 늘 내가 에너지를 받고 가는 것 같다. 환우들뿐 아니라 우리들이 더 참여해야 하는 게 바로 이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라고 말했다.

 ‘유미회’ 회원들은 유독 산에서 정기를 받는다는 이들이 많았다.

 유방암 진단 당시 의사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수술 후 6년이 지난 지금에야 당시 3기였다는 걸 알았다는 박정자(56)씨는 인터뷰 전날에도 수락산에 다녀왔다고 했다. 2007년 암 진단 후 수술을 받고 8번의 항암과 34번의 방사선 치료에도 버틸 수 있던 건 산이 준 희망 덕분이었다. 박씨는 “‘암이라고 해봤자 감기처럼 왔다가는 것’이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 받고, 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쐬면 다 물리칠 수 있다”고 환우들을 위한 말을 전했다.

 암 진단 당시에도 동요하지 않았고 머리를 밀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았을 때도 담담했다는 박성자(55)씨 역시 자신을 가장 동요하게 한 것으로 산을 꼽았다. 2008년 조직검사로 유방암 확진을 받았고 8번의 항암과 37번의 방사선 치료를 견디며 그해 겨울 유미회에 가입했다. 그녀는 환우들과 한 두 번씩 산에 오르게 됐고, 점점 산의 매력에 빠져 주변인들과도 자주 산을 찾는 아마추어 산악인이 됐다.

 “손님처럼 왔다간다고 생각하세요. 산에 오르면 공기가 흐르는 게 느껴지거든요. 어디서 바람이 불고 어디로 가는 지. 암도 같아요. 내게 왔다면 다시 어딘가로 떠날 거거든요. 지금의 저를 보세요. 벌써 5년 전이라 내가 유방암에 걸렸었는지도 잊고 사네요.”

  배은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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