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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복지대책은 국가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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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린이들이 건전하게 성장하고 명랑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은 너무나 당연한 성인들의 책임이다. 이를 위한 사회정책과 복지대책의 방향 또한 스스로 명백한 것이 많다. 이러한 당연한 책임과 명백한 정책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의 문제가 있다. 이는 결국 한국사회의 「어린이 관」자체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지 않으면 안될 만큼 그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어린이의 달 5월을 맞아 중앙아동복리위원회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사회책임과 복지대책』을 주제로 2일, 3일 분도회관에서 「세미나」를 갖고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정범모 박사(서울대사대)의 기조강연을 들은 뒤 분과토의에 들어간 이 「세미나」는 「권익보호를 위한 법회문제」(권순영·변호사) 「도의앙양을 위한 사회환경 정화」 (오기형·연대) 「복지시설문제」(주정일·숙대) 「사회복지관 설치와 청와대회의 설치방안」(강만춘·사회복지연구소) 등을 놓고 50여명의 관계자들이 토론에 참여했다.
정범모 박사는 기조강연을 통해 『어린이에 어떤 환경을 제공하며, 여기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하느냐에 따라 그들은 성인들이 흔히 생각하고 있는 정도보다 훨씬 더 높은 고봉에도 또는 더 깊은 심연에도 이룰 수 있다』고 전제하고, 『한국사회가 벌이는 대책과 정책의 여하에 따라 내일의 이 민족의 지능이 올라가고, 예술성·도덕성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이제 감상 아닌 과학적 가능성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고 「어린이」관의 근본적 수정을 촉구했다.
어린이를 보는 기본적 자세에 관해 그는 몇 가지 개념을 제시했다. 첫째, 어린이는 급속한 성장기에 있으며 거기에 따르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은 신체적·생리적인 것 이외에 지적·정적·사회적·도덕적인 것도 있다. 이 모든 부분에서 위험은 따른다. 성인은 어린이들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고민·좌절·고통·고생에 둔감하거나 성장에 따르는 위험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성장기의 어린이는 성장이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또는 그렇기 때문에 놀랄만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생후의 경험과 환경은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그 도달점을 좌우한다. 이처럼 풍부한 가능성의 인식, 그리고 그 가능성의 실현을 위한 대책이 한국사회에는 빈곤하다. 성장은 또 불역성과 축적성이란 속성을 가졌다.
신체발달의 경우 0∼1세의 영양실조는 1∼2세의 그것보다 후일의 발달에 더 큰 영향을 주며, 이는 또 뒤에 완전히 회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는 지적·정적·도덕적 발달에도 적용된다. 내일에 가서 보충할 셈으로 현재를 빈곤하게 하는 것은 인간성장에 그릇된 대책이다.
또한 어린이들이 성장과정에서 한번 실패를 하게 되면 이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성장에 있어서 한번 실조와 지장이 생기는 것은 되돌아가 회복하기에는 한도가 있고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힘겨운 악순환의 행로를 「보강」하는 셈이다. 사회적으로 성장의 축적성은 사회의 양극화의 근본원인이 된다. 환경과 경험에 차이가 있게 자란 어린이는 순환적으로 점점 양극화되어 지적·정적·사회적 양극화는 경험적·정치적·사회적 양극화에 이른다.
근대화와 함께 한국사회는 어린이나 노인이 늘고 쉴 수 있는 놀이터나 공원보다는 아버지 세대를 위한 술집이 더 많다. 아버지들은 할 일, 즐길 일이 많은데 비해 어린이와 노인이 할 일과 즐길 일은 많지 않다. 성장의 위험을 인식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교통신호만 하나라도 더 붙이고 겨울이면 어른들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교실도 따뜻하게 하며 어른들만이 아닌 어린이들에게도 제나름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있어서 어린이 세대가 지나간 세대보다 더욱 나아질 것을 확신하는 사회가 되어야한다.
이러한 어린이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들을 지금에 사는 한 개인의 위치에서 인식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정 박사는 강조했다. 한 인간으로서의 어린이의 비애와 희락·성장과 좌절에 대해 소박한 인간적 인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분과토의에 들어간 이 「세미나」는 어린이들을 둘러싼 구체적 환경과 복지정책의 문제점을 놓고 토론했다. 권순영씨는 불량완구·불량만화대본업소 등을 단속할 조속한 입법조치를 촉구했다.
그는 또 사생아의 보호를 위한 국내입양법의 정비를 시급한 과제로 지적했다. 복지시호문제에 관해 발표한 주정일 교수는 『한국의 아동복지사업은 아직도 요보설아동을 위한 소극행정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전체아동을 위한 적극행정에로의 발전적 변천이 요망된다』고 말하고 빈곤 가정 보호·공원·어린이놀이터 설치·보건시설확충·심신장애아보호 등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 대응책을 촉구했다.
이러한 어린이들의 건전 육성과 명랑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강만춘씨는 「어린이를 위한 정기대통령주재 청와대회의」와 전국적인 규모의 사회복지관설치를 제안했다. 이러한 국가적 사업을 통해 어린이를 성장의 위험에서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도하고 그들에게 큰 기대를 걸 수 있을 때 그들은 건강하고, 슬기롭고, 지적·정서적 사회적으로 풍요한 한국의 시민으로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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