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 심의회「세미나」주제 강연|대학교육의 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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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교부 교육정책심의회 고등교육분과위원회는 27일, 28일 연세대에서 「한국 고등교육의 개혁방안」에 관한「세미나」를 가졌다. 다음은 고대 김상협 총장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지난 4반세기에 「왕성한 교육열」의 뒷받침으로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양적 팽창을 거듭했다. 그런데 한국의 왕성한 교육열은 「유럽」식의 「엘리트」 양성을 바라는 국가적 요청이나 미국식의 기능전문직 중간지도층의 대량배출을 바라는 사회적 수요의 어느 것에도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합리주의적 타산이나 실사회의 지적 인력 수요와는 관계없이 맹목적으로 폭발한 교육열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맹목적인 교육열로 저질도 좋다는 사고>
이 같은 불건전한 교육열에는 전근대적인 한국식 가족주의의 본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즉 ①유교 전통에 뿌리박은 사대부 숭앙사상에 따라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자녀들을 독서인 측에 끼어 놓아야 되겠다는 체면위주 ②남이 대학에 보내니까 자기가 못하면 열등의식을 느낀다는 허세위주 ③닥쳐올 급격한 변화에서 자기 자손을 보호할 뚜렷한 방책이 없으니 대학에나 보내 두는 것이 안심이라는 자구위주 등이 해방과 더불어 표면화한 것이 한국식의 왕성한 교육열이다.
이런 교육열은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따져 볼 겨를도 마음도 없었고, 오직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것, 대학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저질 상품의 공급에도 불평 없이 마구 사들이는 저질 욕망이었다. 이 같은 저질욕망의 덕분으로 한국의 대학들은 처음부터 저질교육의 실시로도 항의 없이 견뎌 낼 수 있었고 오히려 이를 이용, 저질교육의 확대재생산까지 시도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오늘날 대학의 이상 비대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결과적으로 ①국가적 요청이나 사회적 수요와는 동떨어진 과다한 저질대학군의 난립 ②특수부문에 중점을 둠이 없이 대학마다 잡화상식으로 모든 학과들을 총망라하려는 성향, 이로 말미암은 모든 대학의 개성상실, 중점 상실, 심지어 관립과 사립, 중앙과 지방, 건학 이념을 달리하는 대학 사이의 기능분화가 전혀 없는 상태 ③단과 대와 종합대의 구별조차 없어지고 모든 종류의 대학들이 종합대학 화를 지향하면서 개성 없는 저질교육의 동종번식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대학들이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대학발전의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할 정부당국은 이를 거의 방치한 상태였다. 기껏해야 정부는 ①대학 설립인가·증과 및 증원 결정을 둘러싼 이권배분의 경우에 만약간의 열의를 보이거나 ②최근에 와서는 과격한 학생운동을 미연에 방지하며 사후 처리하는데 만 몰두했을 뿐이다.

<차츰 세련되는 인식 "실력위주" 쪽으로>
지금 한국의 대학이 당면한 긴급한 과제는 그「양적 팽창」을 어떻게 하든「질적 향상」으로 개혁하는데 있다. 맹목적 저질 욕망이었던 지난날의 「왕성한 교육열」도 최근 세련되기 시작하여 저질교육의 공급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비판적 안목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자체적으로도 이처럼 비판적으로 발전해 가는 교육열의 압력을 이겨내고 생존해 가기 위해서는 질적 향상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질적 향상을 실현하는 기본전략은 ①대학간·교원간·학생간에 「우승열패」의 치열한 실력경쟁이 벌어지게 해서 실력배양·질적 향상의 효과를 가져오고 ②대학사회에서 흔히 있는 노화현상을 막기 위해 부당한 수혈작업을 계속할 때, 새 지식 폭발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2가지 기본전제를 먼저 세워야 한다.
이러한 전략으로 「24시간 대학」·「전천후 대학」·「항상 새로운 대학」·「실력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 몇 가지 점진적 개혁안을 열거할 수 있다.
4년제 대학에서도 우수하면 3년 졸업
즉 ①형식적 학점제를 지양하고 과제 중심 제를 실시하면서 연구뿐 아니라 수업조성에 힘쓸 것. ②유급 제와 아울러 월반제도 인정할 것. 4년제 대학에서는 우수한 사람에게 3년 수업으로 졸업할 수 있게 할 것. ③경쟁을 통해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교원의 채용, 승진에 기간부 임용 제를 채택할 것. ④인화를 깨지 않도록 하면서 경쟁강의를 개설할 것. ⑤각 대학의 질적 향상을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아카데미·도크」의 신설. ⑥현재의 이권배당으로 따 놓은, 그래서 인력정책과는 관계없는 정원제를 완화하여 대학간의 경쟁을 조장할 것. ⑦자연계 학과에 국고보조. ⑧자연계의 합동연구와 합동실험실 설치. ⑨대학마다 개성을 가진 중점학과제 권장. ⑩국립대학을 특수법인으로 하고 사립대학을 개인의 사유물에서 해방시켜 자립과 책임을 대학사회에 귀속시킬 것 등이다.
각 대학의 질 평가할 상설기구 설치 필요
이 같은 대학개혁안은 결국은 한국사회에 지적 실력경쟁 위주의 가치관(Meritocracy)이 통용되느냐는 분위기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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