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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농업 기술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농대를 지망하는 여학생들의 수는 10여년 전에 비해 상당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금년 봄 고대 농대의 신입생 2백 75명중 47명이 여자였는데 4, 5년 전 만해도 여학생 수는 10명을 넘지 못했었다.
농학·임학·농화학·원예·축산·식품 공학 등의 분야로 나뉜 농대의 각 과 중 여학생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학과는 원예학과로 고려대 신입생의 경우에도 47명중 26명이 원예학과에 몰리고 있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에는 일종의 취미로 농대에 진학하는 수가 많기 때문에 졸업한 후 전공과 관계 있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고려대 농대 학장 이춘성 교수는 말한다.
농대 졸업생들은 학교나 교사로 진출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농협·농촌 진홍청·산림청· 임업 시험장·농산물 시험소·전매청·방사선 농학 연구소 등의 국립 기관에서 연구직으로 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아직 이 분야에서는 개인 연구소나 사업장을 운영하기 힘든 실정이므로 대부분 4급 을의 공무원으로 취업하게 된다.
현재 여성 농업 연구직이 일하고 있는 곳은 방사선 농학 연구소·농촌진흥청·임업 시험장 등이며 그 숫자는 10명 정도로 꼽혀진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미국서 박사 학위를 받아 온 방사선 농학 연구소 이미순씨가 여성으로는 유일한 연구관(3급을)의 자리에 올라 있고 나머지는 4급 아니면 임시직이다.
홍릉의 20만평이 넘는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임업 시험소의 연구직 30여명 중 홍일점 인 심공자씨(32)는 64년 봄 서울대 농대 농생물과를 졸업, 9년째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동기생 남자들 중에는 연구관으로 승진한 사람도 있으나 그는 현재 4급 갑이며 봉급은 4월에 인상된 수준으로 수당 5천원을 포함해서 3만원이다.
농대 동창이며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이창근씨와 4년 전 결혼, 아들 하나를 둔 심공자씨는 『박봉이지만 여학교 시절부터 나무 만지는 일을 꿈꾸었기 때문에 불평 없이 일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보호과의 수병 연구실에서 대추나무의 도깨비집 병을 담당하고 있다.
『도깨비집병이란 옮겨졌다 하면 1, 2년 안에 온통 나무를 죽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대추가 귀해지도록 만든 큰 원인이 되었었고 이런 병에 대한 연구는 시험장 안에 있는 묘목 만으론 불충분하기 때문에 영동·전주·청주 등의 대추 산지를 찾아다니며 병균을 수집해 오곤 해요.』
나뭇잎·줄기·열매 등에 생기는 여러 가지의 병 증세를 살피면서 그 병의 원인이 벌레에 의한 것인지 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뿌리에서 오는 것인지를 판단,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아내는 「나무 의사」가 그의 직업이다.
심공자씨는 자연을 사랑하는 여성이라면 별다른 육체적·정신적인 부담 없이 즐겁게 수행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추천한다.
『일본만 해도 많은 농업 연구직 여성이 있대요. 임업 시험소는 조림·보호·이용·.경영 조사·토양·검사 등 6개 부문으로 나눠 있는데 어느 분야라도 여성이 무리 없이 해 낼 수 있어요.』
심공자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근교에 유실수 농장을 마련하는 것이 큰 소원인데 곧 실천에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밤·대추 등을 부부의 힘으로 관리할 수 있는 규모 정도로 만 심고 『아이들과 나무가 함께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으로 일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꼭 큰 돈벌이가 안되더라도 나무와의 관계에선 손해라든가 배신이라든가 하는 대인 관계의 고통이 없어요. 이것이 제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심공자씨가 계획하는 정도의 농장이 여기 저기 생겨날 전망은 요즘 상황에서 아주 밝은 편이며 따라서 이 분야의 수요는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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