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박물관 요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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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박물관에서 유물을 다룰 수 있는 요원 즉 학예 직 여성은 극히 한정돼있다. 국립박물관, 각 대학의 박물관, 지방 시-도립박물관, 민속관등 역사적 유물들을 보관·전시하는 기구가 적지 않지만 거기서 연구원으로 몸담아 일하는 여성은 전국을 통틀어 3명. 국립박물관의 유물계장 이난영 씨와 미술과 이회구씨, 그리고 이화여대 박물관연구원 김화영 씨에 불과하다. 우리 나라 박물관 사를 들추더라도 더 몇이 꼽히지 않는다. 이대박물관에 손경수·강경숙·김경희씨 등이 있었는데 모두 결혼과 동시에 이런 일에서 인연을 끊었다. 그야말로 전문적인 일의 성격 때문 일 것이다. 우선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로 온갖 유물을 아끼는 마음이 피부에 배어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노력이상의 취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사학과나 고고학과 출신이라도 잠깐씩 거쳐간다거나 전업해서 쉽게 손댈 수 있는 일이 못된다. 평생을 유물 속에 파묻혀 있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그런 특수 분야의 전문직인 것이다.
물론 외국에 있어서는 많은 여성들이 박물관요원으로 종사한다.
박물관이나 도서관 같은 기관이면 과반수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선 이런 분야에서 여성요원이 양성되지 않는다. 혹 지망한다 하더라도 발붙일 자리가 없고 또 결혼하자 가정에 묻혀 일손을 떼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성의 섬세함과 차분함은 박물관에서 유물을 조사 정리하는데 매우 적합한 요건이다. 그러함에도 그 요원이 되는 자격에 까다로운 점이 있다. 박물관의 전문가「큐레이터」라면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학문적인 기초와 연 조로서 계산되는 체험이 축적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학자가 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수업이 필요한 것이다. 뿐더러 우리 나라의 사회관습은 이런 까다로운 일거리를 여성에게 잘 맡기려 하지 않는다. 같은 수련을 거쳤어도 남녀엔 차등을 두기 때문에 여성에겐 길이 냉큼 트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현재 3명의 학예 직 여성요원들은 한결같이 미혼. 맨 먼저 박물관 연구요원으로 선구자가 된 이난영 학예연구관은『일에 파묻혀 지내다보니 결혼할 틈이 없었던 거죠』라는 대답인데 역시 다른 두 여성에게서도 마찬가지. 그는 57년에 박물관에 들어와 금년이 만 16년.
그 동안 박물관 안에서의 수련뿐만 아니라 일본 입 교대와 동경 대 및「하와이」대학에서 박물관 학·인류학 등에 관한 연구와「트레이닝」을 받았다. 저서로는「한국금석문추보」.
대학을 나온 후에도 끊임없는 연구와 수련을 거쳐왔음에도 관리의 위계로는「3급을」. 우리 나라에선 연구수당조차 없는 3만원 미만의「샐러리맨」이다.
모교에서 박사「코스」를 밟고 있는 김화영 연구원은 9년째 박물관 일을 해오지만 14년간 전국을 누비고 다니기로 유명한 여성 미술사 학도. 발굴현장에 참가한 곳만도 30여 군데를 헤아리는데『새로운 자료를 봐야하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만은 공부가 안돼요. 때로는 자비부담도 여간 적잖아서 괴로움이 많지요.』대학에서의 수당은 전임강사 급이다.
그는 결혼한 선배들의 경우 대학에서 뒷받침만 해준다면 연구생활을 계속 할 수 있겠는데 아직도 대학박물관의 직 제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는 지방 고분을 발굴 나갔을 때「고려장 파는 여자」란 이상한 눈초리를 받지만, 조그만 치의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고. 곧 그것은 어디까지나「유물」로만 생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험 산을 넘고 발굴 현장의 야경을 서는 일 등은 여성이기 때문에 고충스러운 것.
『박물관에 시집온 셈이죠. 생활의 전부가 돼버려서 이젠 여길 떠나선 못살 것 같군요.』 이 학예 관의 말이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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