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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월 11만 6800원 장애연금뿐 … 간병 25년, 살 길이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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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일 오후 들른 충남 당진시 송악읍 화재 현장은 폐허 같았다. 아버지 김모(55)씨가 전날 새벽 집에 불을 질러 식물인간 아들(31)과 함께 숨진 곳이다. 숨진 작은아들의 흔적이라고는 타다 남은 기저귀가 전부였다. 김씨는 “아들아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빈소에서 만난 처남(숨진 아들의 외삼촌)은 “부모는 아이가 자신들을 알아본다고 믿었고, (다시 깨어날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그렇게 달라붙어 살았다. 누군가는 옆에서 항상 아이를 지켰고 세 식구가 항상 거실에서 함께 잤다”고 말했다.

 아들은 25년 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식물인간이 됐다. 김씨가 다니던 가스회사 동료는 “김씨 부부가 애한테 좋은 것만 먹이고 지극정성으로 돌봤다”고 말했다. 동네 이장 안재민씨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잘 참고 왔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김씨 부자의 죽음은 복지예산 100조원, 국민의료비 100조원 시대의 그늘이다. 그 많은 돈을 의료와 복지에 쓰는데도 김씨 부자의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했다. 김씨 가정에 돌아간 복지 혜택은 월 11만6800원의 장애인연금이 전부였다. 그나마 도입한 지 3년 정도밖에 안 됐다. 의료와 복지 두 군데 모두 구멍이 뚫려 있다.

 김씨 부부는 아들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 신청을 하지 않았다. 65세 미만이라도 뇌내출혈 등의 노인성 질환이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뇌질환일 경우 서비스를 받는 데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됐으면 요양보호사나 간호사의 방문 수발(간병) 도움을 받았을 텐데 그게 불가능했다. 관내 병원에서 제공하는 가정간호서비스도, 장애인의 나들이를 도와주는 활동지원서비스도 받지 못했다.

 요양병원에 입원시킬 생각도 못했다. 부부는 아이 곁을 떠날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요양병원에 가면 매달 100만원이 넘는 간병비·입원비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송악읍사무소 이혜진 주무관은 “솔직히 전혀 모르는 집이다. 복지 혜택을 알아보고 신청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들처럼 집에서 간병하는 중증 또는 식물인간 환자가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병원에 갈 형편이 못 되거나 집에서 쓰는 각종 의료장비 등을 옮기기 힘들어 병원에 가기 힘든 경우다. 루게릭·파킨슨·뇌질환·말기암·치매·희귀병·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의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다. 암 환자 중 정부에 등록은 했는데 진료비를 쓴 흔적이 없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6월 말 현재 재가(在家) 암 환자만 7만3000명에 달한다. 김씨 가정처럼 복지서비스를 받는 게 별로 없을 경우 통계로 잘 잡히지도 않는다.

 이들은 집에서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거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가래를 뽑아내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자세를 바꾸는 등의 간병을 한다. 서울대병원 허대석(종양내과) 교수는 “이런 환자들은 한시라도 눈을 떼면 사망한다. 가족 중 누군가 24시간 간병에 매달린다. 그러면 일을 그만둬야 하고 간병 고통이 극심해져 가정이 무너지거나 당진 사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부원장은 “식물인간이나 중증환자를 가정에서 돌볼 게 아니라 사회가 맡아야 한다”며 “장기요양보험 서비스 대상자를 넓히고 간병을 제도화(건보 적용 등)해서 가족 부담을 줄여 이들이 요양병원으로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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