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연설 후, 결국 여야가 해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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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대통령의 국회연설 후 야당의 반발은 더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은 곧바로 규탄대회를 열었고 헬기 충돌 사고를 다루기 위한 상임위도 거부했다. 새누리당이 국가정보원 개혁 특별위원회를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특별검사와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표했다. 또 국정원장·법무부 장관·국가보훈처장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내기로 했다. 게다가 강기정 의원은 대통령 경호차량을 발로 걷어찼다가 경호요원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대로면 민주당이 결산·예산안 심사와 민생 법안 통과를 미루면서 대(對)정권 투쟁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 전반을 다루는 특검과 국정원 개혁 특위의 동시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은 연설에서 어떤 문제든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안을 만들면 수용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두 사안이 행정부와 관련된 것이니 대통령이 먼저 입장을 정해야 하며,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야당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입장에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게 민주당이 반발하는 이유다.

 법률적으로 특검은 전적으로 국회가 정할 사안이다. 국회가 합의하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그러니 국회에서 알아서 정하면 된다. 그런데 국정원 댓글 의혹은 검찰 기소로 재판에 회부돼 있는 단계다.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 특검이 실시된 전례는 없다. 재판과 별도로 이미 국회 국정조사와 국정감사까지 실시됐다.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의혹 역시 군 사법당국이 조사 중이다. 그런데도 11개월 전 사안에 대해 또 특검까지 하면 정국 혼란으로 국가 운영이 정체될 것이란 우려가 적잖다. 사법부 판결을 보고 대통령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고 약속했으니 이를 지켜본 뒤 특검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특검에 굳이 특위를 연계시킬 필요도 없다.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국정원 개혁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국회에서 개혁안을 빨리 논의하는 게 맞다. 새누리당도 특위를 수용한다 했으니 소모적인 대치를 풀고 건설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게 정도다. 국정원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자체 개혁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특위가 구성될 경우 국가 안보와 관련된 국정원의 조직이나 활동은 철저히 보호될 수 있도록 세심한 방안이 보장돼야 함은 물론이다.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의혹과 국정원 개혁을 중시하는 민주당의 정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서만큼 중요한 게 절차의 합법성과 정당성이다. 민주당은 과거 한나라당 집권 때부터 대통령이 여당에 정치적 입김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해 왔다. 특검·특위 같은 국회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여당을 지휘하도록 주문하는 건 종전의 민주당 논리와도 맞지 않다.

 새누리당은 특검 거부에 앞서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행정부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 재발 방지책을 촉구해야 한다. 대통령에 맞서 국회 권능을 회복하는 건 야당뿐 아니라 여당의 몫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