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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례준칙 공포 3년|과연 개선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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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정의례준칙이 공포 시행 된지 지난 5일로 만3년이 됐다. 번잡한 옛 의례에 따르는 고루함과 낭비를 없애기 위해 가정의례준칙을 마련했지만 아직도 생활화되기에는 요원한 실정이다. 농촌은 오래 내려온 풍습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여건들 때문에, 도시는 부유층과 지식층들이 대부분 외면하는 바람에 남의 이목과 체면을 살리면서 허례허식에 얽매여 있다.
보사부는 그 동안 중앙가정의례준칙 실천추진위원회 밑에 2백5개의 전국 각시·도·군에 지방실천추진위원회를 조직, 16만 권의 해설책자를 뿌리고 5만여 회에 걸친 강연회·좌담회를 통해 계몽활동을 벌여 왔다.
일선 지방공무원·군수·변호사·교수·노인회·지방유지들이 일부지역에서 보사부의 계몽활동에 가담,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고있다.
박학국씨(강원)는 지난 3년 동안 3백여회나 계몽강연 연사로 나섰고 54건의 결혼식과 38건의 장례식을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하도록 설득했다. 경북 김천시 평화동 박효근씨는 부모상을 준칙에 따라 간소하게 치르고 남은 돈으로 밀가루 50부대를 사 가난한 이웃을 돕기도 했다. 전북 김제군수 문병필씨는 준칙에 따른 모의제사와 모의결혼식을 군민들에게 보여주고 24쌍의 신혼부부를 준칙대로 결혼하도록 했다.
보사부는 오는 73년까지를 계몽기간, 74∼76년까지 실천기간, 77년부터는 생활화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지금 같은 계몽활동과 국민의 호응으로써는 5년 뒤부터 정부의 의도대로 생활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보사부 실무자들에 의하면 농촌보다는 도시,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지식층과 부유층의 가정의례준칙 실현에 대한 외면이 더 큰 문제가 되고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가정의례준칙을 옳은 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막상 자기 일로 닥쳤을 때에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고 체면을 앞세우게 되어 준칙에 따르기를 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계몽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올해부터 각종 공무원교육과정에 가정의례준칙을 필수과목으로 넣었다. 가정의례준칙이 시행된 이후의 변화와 반응을 보면-.
▲혼례=『약혼식은 하지 않는다. 호적초본과 건강진단서를 첨부한 약혼서를 교환한다』는 권유(제3조)는 거의 사문화 지경. 결혼날짜 잡는 일도 당사자의 의사보다 소위 길일을 따르는 형편이어서 좋은 날이라는 때는 예식장마다 초만원사례.
청첩장은 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권유하고 있으나 정반대 현상. 일부 공무원의 경우 청첩장 대신 전화로 초대하는 바람에 더 많은 하객이 몰리는 부작용을 빚기도 한 사례가 있다. 결혼식장은 도시의 경우 양가의 가정이나 공회당이 아닌 예식장. 혼례복은 원삼 족두리와 사모관대 등 시골풍습은 거의 사라지고 있으나 「웨딩·드레스」는 당분간 없어지기 어려울 듯하다. 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혼인신고서에 기명 날인, 혼인당일로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한 규정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다만 서울출신 J국회의원이 최근 주례승낙조건으로 당일신고제를 채택, 정부시책에 호응하고 나섰다. 신행은 결혼당일로 되어있으나 대개 3일 후에 하고 있다. 예물과 폐백은 많이 간소화됐으나 시골의 피로연은 여전한 형편이다.
▲상례=발상 때 머리풀고 호곡하는 것을 삼가도록 권장하지만 별무 효과다. 관공서명·일반 직장명·단체명의의 부고를 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부유층과 고위층에는 마이동풍 격이다. 지난 한 햇 동안 신문광고란에 게재된 일반직장·학교 등 명의의 부고건수는 보사부 집계로 모두 4백48건에 달하고 있다. 수의를 평상복으로 하도록 한 것은 『조상에 대한 모독』이라는 반발을 사기도 하고 부유층과 고위층은 솔선하여 『조객은 조화를 보내지 않는다』는 권유를 외면하고있다.
▲제례=천신·묘사·시제 등을 음력 8월 한가위에 같이 지내도록 계몽하고 있으나 향토색이 짙은 시골서는 거의 무반응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제수는 평상시외 간소한 반상음식으로 할 것』을 권유받자 몹시 화를 냈다는 실무자의 말이다. 지방서식과 축문서식을 한글로 간소화하도록 유인물을 돌렸으나 일부 젊은 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반기는 기색이 없었다. <김영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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