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박은선 리스크' 위험의 삼각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규연
논설위원

축구선수 박은선의 성별 논란이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냈다. 1989년 여름, 전남 영광에서 벌어진 무뇌아(無腦兒) 사태였다. 졸병 기자는 ‘총’을 맞고 격론의 땅으로 갔다. 논란은 영광원전 직원의 부인이 무뇌증 기형아를 유산한 데서 비롯됐다. 단어만으로도 소름을 돋게 하는 무뇌증의 유발자가 방사능이라고 환경단체들이 거칠게 주장하고 나섰다. 미디어는 여과 없이 위기의 메시지를 퍼뜨렸다.

 취재를 거듭할수록 맥이 빠졌다. 원전 직원은 사택 경비원이었다. 근무기록을 봐도 방사선구역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 산부인과 전문가를 찾아갔다. 전국적으로 산모 1000명 중 1~6명꼴로 무뇌아를 유산한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듣게 됐다. 무뇌아와 방사선을 이어줄 상식의 끈이 없어 보였다. 전력당국은 느닷없이 출몰한 메시지에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했다. 그 사이에 반핵 시위가 번져나갔다.

 위기와 위험은 쌍둥이가 아니다. 위기 관리에 실패하면 위험이 된다. 반면에 위기를 잘 이겨내면 더 큰 평화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이슈는 위험이 되고 또 어떤 이슈는 평화가 될까. 이후 안면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사태, 광우병 파동 등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어설프지만 마음속에 ‘위험의 삼각형’을 갖게 됐다. 위험이라는 도형은 적어도 세 가지의 변이 만날 때 그려진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제1 변은 낯선 자극이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메시지를 접할 때 호기심 또는 위협을 느낀다. 그 낯섦이 생명이나 안전을 찌르는 자극이라면 위협만 남게 된다. 제2 변은 거친 스피커다. 논리에 어긋나더라도 과감하게 질러대는 목소리가 있어야 낯선 자극은 몸집을 불린다. 마지막 변은 막힌 비상구다. 낯선 자극을 피하거나 설득할 출구가 없을 때 비로소 위험의 삼각형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세 변 중 한 변만 무너져도 큰 위험은 오지 않는다. 무뇌아 사건에는 방사선·기형이라는 낯선 자극이 있었다. 반핵 환경단체와 미성숙한 미디어라는 거친 스피커도 있었다. 전력당국은 낯선 자극을 처리하거나 달랠 잣대나 회피법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박은선 파동에서도 위험의 삼각형이 발견된다. 박 선수의 맹활약에 힘입어 소속팀은 여자축구 리그에서 준우승을 한다. 이에 다른 팀 감독들이 박 선수에 대한 성호르몬 검사 같은 성별 판단을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시즌을 보이콧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무엇으로 성을 구별할까. 십중팔구는 성 염색체와 생식기 구조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둘 말고도 성호르몬·생식선·성징 등 여러 생물학적 지표가 있다. 사회·문화적 성 정체성까지 고려하면 성별 판단은 심오한 문제가 된다. 성별 판단은 유교의 뿌리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낯선 자극임에 틀림없었다.

 성 정체성은 기본적인 인권이다. 감독들은 이를 간과했다. 박 선수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근거도 거의 없이, 그것도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들먹였다. 한 선수의 성별 판단을 두고 보이콧 운운하는 언행을 보였다. 이들은 거친 스피커였다. 격분한 네티즌 역시 혹독한 비난을 쏟아내면서 위기는 고조됐다. 게다가 비상구는 막혀 있었다. 스포츠계는 사태 내내 뒷짐만 지고 있었다. 성별 호르몬 기준이나 위기관리 매뉴얼 등은 있지도 않았다.

 ‘박은선 리스크’는 분명 위험으로 치달았다. 박 선수와 주변 사람은 인격 모독을 당했다. 감독들도 자신이 던진 논란의 부메랑에 맞아 사퇴하거나 코너에 몰렸다. 공동체는 이번 위기를 성에 대한 성찰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살다 보면 개인이든 기업·기관이든 갖가지 위기를 겪는다. 낯선 자극이 적게 출현하도록 평소에 금기 없는 소통을 해야 한다. 그래도 출현한다면 신속한 대응으로 스피커 볼륨을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환히 보이는 곳에 비상구도 설치해 두어야 한다. 위험의 삼각형이 그려지지 않도록….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