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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있는 아침]-'오늘 같은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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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시영(1949~) '오늘 같은 날' 전문

일요일 낮 신촌역 마을버스 1번 안

등산복 차림의 화사한 할머니 두 분이

젊은 운전기사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여보시우 젊은 양반! 오늘같이 젊은 날은 마음껏 사랑하시구려 그래야 산천도 다 환해진다우"

봄날이구나. 춘풍은 만건곤하건만 이내 몸은 마을버스 타고 약수터로 가는 것이 전부로구나. 이렇게 갑자기 여기에 올 줄 내 알았던가. 젊은 기사여! 기운차리시라. 나도 한때는 봄날의 훈풍에 밀려 꽃 속을 헤매는 벌들에게 이 지상에서 가장 달콤한 꿀을 준 바 있나니. 아직 개나리꽃이 피지 않았다고, 꽃샘바람 여전하다고 두려워말자. 봄이다. 몸의 세포들은 벌써 좌우로 팔굽혀펴기 운동을 하며 소란하지 않은가. 그 어수선함에 몸을 맡기는 사람에게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산천만 환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가 다 환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강형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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