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1949~) '오늘 같은 날' 전문
일요일 낮 신촌역 마을버스 1번 안
등산복 차림의 화사한 할머니 두 분이
젊은 운전기사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여보시우 젊은 양반! 오늘같이 젊은 날은 마음껏 사랑하시구려 그래야 산천도 다 환해진다우"
봄날이구나. 춘풍은 만건곤하건만 이내 몸은 마을버스 타고 약수터로 가는 것이 전부로구나. 이렇게 갑자기 여기에 올 줄 내 알았던가. 젊은 기사여! 기운차리시라. 나도 한때는 봄날의 훈풍에 밀려 꽃 속을 헤매는 벌들에게 이 지상에서 가장 달콤한 꿀을 준 바 있나니. 아직 개나리꽃이 피지 않았다고, 꽃샘바람 여전하다고 두려워말자. 봄이다. 몸의 세포들은 벌써 좌우로 팔굽혀펴기 운동을 하며 소란하지 않은가. 그 어수선함에 몸을 맡기는 사람에게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산천만 환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가 다 환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강형철<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