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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영원한 미스터리 … 그래서 나는 항상 끌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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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호러 킹’ 스티븐 킹(66)이 12일 유러피언 아메리칸 프레스 클럽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평생 공포소설을 써온 그는 “내 나이에도 정말로 공포스러운 것은 알츠하이머”라고 말했다. [파리 AP=뉴시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소설·영화로 우리 시대 대중문화를 지배해온 스티븐 킹(66)은 유머가 넘쳤다. 전세계에서 3억 권이 넘는 책이 팔린 작가로 알려진 그다. 12일(현지시간) 오후 그를 기다리고 있던 세계 각국의 기자 200여 명 앞에서 그는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고, 마지막 답변도 농담으로 끝냈다. 어딘가 뾰족하고, 음산한 기운을 지녔을 것 같은 ‘호러 킹’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날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러피언 아메리칸 프레스 클럽’ 초청으로 열린 킹의 기자회견은 이 단체가 주최한 회견 중에서 가장 많은 참석 인원을 기록했다. 주최 측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때보다 더 많은 기자가 참석했다”고 말했다.

 킹은 프랑스에서의 환대가 감개무량한 듯 “나이 든, 한 물 간 작가일 뿐인데 이런 관심은 뜻밖이다. 마치 저스틴 비버가 된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신작 『11/22/63』과 『닥터 슬립』을 들고 왔다. 베이지색 스웨터에 청바지 차림의 킹은 코카콜라 라이트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시고 시작했다.

 - 프랑스 방문은 처음이다.

 “여러분은 모두 나의 언어(영어)를 구사하지만, 나는 여러분의 언어를 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웠다. 나를 반길까도 궁금했다. 늙은 미국 로커들이 유럽에 와서 환대받는 것을 보고 늙은 미국 소설가가 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오게 됐다.”

 - ‘호러 작가’라는 별칭이 마음에 드나.

 “플로리다의 한 슈퍼마켓에서 만난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당신의 공포소설을 읽은 뒤엔 『쇼생크 탈출』 같은 책으로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그 책도 내가 썼다고 하니까 ‘그럴 리가 없다’며 끝내 안 믿더라.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라. 상관없다.”

 - 무시무시한 상황을 창조하는 데 탁월한 대가가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죽음은 뭘까.

 “건강전도사로 불리는 사람이 토크쇼에 나와서 방송 중에 죽은 일이 있다. 내가 이 자리에서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으면 가장 무시무시한 죽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들 가운데 한 명이 심장마비가 걸리면 그건 내겐 좋은 소재가 되겠지.”(웃음)

 - 소설에서 죽음을 많이 다뤄왔는데.

 “예전보다 죽음에 더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요즘 부쩍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죽음에는 보편성이 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우리 모두 거쳐간다. 또 다른 보편적인 것은 탄생인데, 탄생은 모두가 경험했지만 죽음은 아무도 그 경험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건 미스터리이고, 미스터리는 나를 흥미롭게 한다.”

 - 당신을 두렵게 하는 건 뭔가.

 "내 나이에는 알츠하이머, 치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게 두렵다. 정말로 무섭다.”

 - 요즘 젊은 독자들은 온라인 게임과 공포영화를 많이 접한다. 공포소설의 독자를 빼앗기는 건 아닌가.

 "공포소설에 대한 욕구는 따로 있다고 본다. 판타지와 공포소설 최대 시장은 15~32세 연령대다. 그 나이에는 마치 방탄복을 입은 것 같이, 무서운 것을 보는 게 재미있다. 하지만 50~60대가 되면 무서운 것을 스스로 찾는 경향은 줄어든다. 왜냐하면 그 나이에는 실제 삶에서 공포를 맛보기 때문이다. 암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것이다.”

 - 픽션이 잔인한 현실로 전환되고, 공포스러운 현실이 픽션이 되는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다. 언제든지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은 있다. 폭력적인 TV나 영화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지만, 이런 게 없어도 다른 방법으로 폭력을 만들어낸다. 내년에 나올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보스턴 마라톤 폭발 사고와 비슷한 공격을 계획하는 주인공을 그렸다. 보스턴 참사가 일어났을 때 막 집필을 끝낸 상황이었다. ‘삶이 예술을 모방하느냐, 예술이 삶을 모방하느냐‘에서 두 가지 모두 참이다.”

 - 작품이 영화와 TV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졌다.

 “어렸을 때 집에 TV가 없던 세대다. 사물을 시각적으로 보는 경험은 대학 때 시를 읽으면서 얻었다. 시는 스토리를 말하지 않고 보여준다. 이미지가 설교보다 더 강력하다. 픽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감정의 소설가’이다. 내 글을 통해 사람의 감정에 파고 들고 싶다. 소름 돋게 하고, 맥박 뛰게 하고, 눈물 고이게 만들고 싶다. 그렇기 위해선 그들에게 시각적 경험을 줘야 한다.”

 - 공포스러운 상황을 만드는 공식이 있나.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그 캐릭터를 위험에 빠뜨리면 그를 위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인간 본성의 위대함 중 하나인 공감(empathy) 능력 때문이다.”

 - 당신 소설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주인공이 자주 나온다. 만약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은가.

 “그런 힘은 갖고 싶지 않다. 만약 사람의 마음 속 말이 들리면 정작 내가 듣고 싶은 것은 못 들을 수 있다. 아, 한 가지 있다. 물건을 찾는 능력이다. 늘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모르고, 냉장고에서 머스터드(겨자) 병을 못 찾는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냉장고 맹인’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요구르트를 못 찾아서 맨날 아내를 부른다.”

 - 하루에 4~6시간 읽거나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일정한 시간을 쏟지 않으면 잘 할 수 없다. 지극히 단순한 명제다.”

 - 당신이 쓰레기통에 버린 데뷔 작품 『캐리』 원고를 부인이 건져내지 않았으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글쎄. 그건 매우 행운인 일이었다. 책 판권을 팔았다며 편집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40만 달러를 받았다는 말이 믿기지 않아서 4000달러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당시 4인 가족이 1년에 6400달러로 생활할 때였다.”

 그는 약속한 회견 시간 60분에서 단 1분도 넘기지 않고 일어섰다. 질문을 하고 싶어 든 손은 여전히 20개가 넘었다.

  파리=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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