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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대적의의 정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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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율곡 문화원은 7일 신문회관에서 제1회 율곡 법률 문화상 시상식과 함께 율곡 사상 대 강연회를 가졌다.
한국 사상의 정립에 있어서 율곡이 차지하는 의미를 재인식하고 오늘날 한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지침을 얻고자 하는 것이 이번 강연회의 목적이었다. 1536년 음12월26일에 태어난 율곡의 탄생일을 기해서 마련된 강연회는 「이통기국」으로 대표되는. 그의 철학사상이 실학과 교육정신·변법주의·애국심·10만정강양병론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현실 문제해결을 위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율곡 사상의 현대적 회의」를 말한 유승국 교수(성균관대)는 특히 율곡의 철학사상의 특이성을 먼저 강조했다.
유학 특히 주자학이 지배하던 이조에 있어서 율곡은 양명학은 물론 불교와 도교에도 깊은 연구를 쌓아 독특한 이통기국(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한다)론을 내세웠다.
퇴계의 이기설이 체용에 있어서 특히 이를 강조하는 정통적인 주자설을 지킨다면 서화담은 기만을 강조했고 율곡은 「이기의 묘」를 내세운다는 것.
기발리승지의 주장에는 실제에 있어서의 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며 형 이상적 이와 형이하적 기가 하나로 지양되는 경지의 현실성이 두드러진다. 여기서 생산적 진리가 대두되며 이 현실성의 인식 때문에 성호는 『진실로 실을 아는 이는 율곡과 반계 뿐』이라고 찬양했던 것. 그의 현실대응의 태도는 실학의 정신적 선구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해 기강과 질서를 강조하고 여론정치와 노예 해방과 서얼타파의 근대의식을 키울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율곡 사상을 김형효 박사(공사·철학)는 「한국의 문화사상 그 원리와 그 정책」면에서 오늘의 현실과 대비, 밀착시켰다.
율곡을 혼란한 시대에 있어서 국론통일의 철학적 근거 시기이며 그의 이통기국론을 「스피노자」 「케인즈」를 종합하는 보편 정신으로 표현한 김 교수는 자기 시대의 사회적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애썼던 율곡에게서 현실 타개의 길을 배워야한다고 주장했다.
물질적·기술적 성장만을 강조하는데서 발생한 현실 문화 현상의 병리 때문에 우리 사회에 가치의 혼란과 이념 부재가 배제된 점을 반성하고 「자본과 윤리」가 보존된 사회의 건설을 위해 율곡 사상의 의미가 재구성되었다.
『돈벌이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나 한다』는 천민 자본주의가 오늘날 불신풍조를 깊게 했다면 국부와 후생을 보편적 윤리의식 위에 세우려던 율곡의 사상은 현실적 의미가 큰 것.
그는 대중과 중산계층에 토대를 둔 「건중건극」론을 내세워 사리사욕의 제거로 실리·실사·실공을 이루자고 했다.
그의 민본주의 이념은 「성학집요」의 『인민을 천으로 삼아…』에도 두드러지는데, 이는 모든 사회 계층을 포괄하는 인민관으로 인민 가운데 있는 여러 체험과 경험들을 모으는 일이 그의 언론관으로 나타난다는 것.
「하이데거」가 『모은다』는 것이 『통치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고 한 것 같이 인민의 말-인민의 욕망을 수용하고 교류하는 원탁의 필요를 율곡은 이미 간파했던 것이다.
이통기국론은 무형의 정신과 유형의 물질이 상호교류해서 변역에 적응하는 가치 철학을 구성할 수 있는데, 가령 기발리승지는 물질발 정신승지로 해석된다는 설명이다.
율곡의 민본주의 정치사상은 특히 현대 민주주의의 한국적 발현으로서 최창규씨(서울대 교양과정 부 전임강사) 에 의해 해석되었다.
민주주의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율곡이 내세운 「경제사」는 현대적 의미의 의회 정치관을 피력한 것이며, 「공론」의 강조는 여론 정치사상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공론」은 정치「에너지」이며, 『백성이 있어야 정치가 있다』는 주장의 표현. 그는 한국역사상 최초의 「국시」개념 정립 자이기도 하다.
『국시라는 것은 한나라 사람들이 꾀하지 않더라도 옳다고 하는 것을 말함이니, 이로써 유혹하는 것도 아니요, 위로써 두렵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삼척동자라도 옳다고 하는 것, 이것이 국시』라고 4백년 전에 그는 말했던 것이다.
국시의 결정을 국민의 동의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권위는 정당성에의 동의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성의 조건은 왕도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보장된 행복, 즉 양민의 뜻을 백성이 믿을 때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율곡은 그 효율적 방법론을 점진적 주장주의·무실론·대동사상에서 찾는다. 대동 사상은 재화와 권력이 귀한 것이긴 하나 혼자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것임을 강조한 것. 「법이 오래면 폐해가 생기기」때문에 변법주의를 내세웠으며 이는 사회변화 이론의 한국적 효시로 해석된다는 것.
그의 진보적 변장론은 일종의 혁명사상. 『혁구변신의 욧점은 백성을 편케 하는데 있을 뿐이다. 만일 탐관오리와 저 한가한 사람들(신민)이 모두 즐겨 좇기를 기다린 후에 하려한다면 숙폐는 고쳐지지 않는다』는 주장은 눈부신 정론이다. 율곡은 민주주의 이념에 그치지 않고 민족주의를 내세웠다고 성리학도 민족주의 발현의 표현이라면 주체성의 고양과 한국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율곡·우암·한말 척사 위정파로 연결 지어지는 것이라는 최씨의 해석이다.
일본의 침략에 의해 한말에 한국의 전통이 파괴되고 또 이민족에 의해 근대가 주어지고 있다면 한국인이 전통을 계승하고 이를 근대화에로 재창조하는 과업은 의무이며 의리라는 관점에서 율곡의 사상을 현대에 되살려 현실의 고난을 타개하는 힘으로 삼는 것은 큰 중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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